전문가들 "한국은 정책생태계 없고 오너경영 재벌체제도 일본과 달라…해체가 최선"
기업들의 전경련 탈퇴행렬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전경련 해체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국회 내에선 여당인 새누리당이 전경련 해체에 지나치게 방어적이란 얘기가 나온다. 야당이 1월 임시국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결의안을 1순위로 처리하려 했지만 여당은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여당은 전경련 쇄신론으로 맞서고 있다. 전경련을 미국의 헤리티지같은 싱크탱크나 일본 경단련처럼 공적 절차 내에서 가동하는 이익집단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얘기다. 하지만 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전경련 쇄신론은 허구라며 전경련 해체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인허가권, 금융배분 특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61년 군사정부가 발족시킨 경제재건촉진회에서 비롯됐다. 5.16 쿠데타 이후 혁명정부가 부정축재자로 몰아 구금한 경제인 13인이 43일만에 풀려난 후 결성한 경제인 단체다.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꾼 후 1968년 다시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명했다.
한국 재벌들은 인허가권과 특혜적 금융배분을 지원받아 팽창, 정경유착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 중심엔 전경련이 존재했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전경련이 주도해 만들어진 일해재단은 미르K재단의 판박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폐가 청산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전경련 해체는 회원사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전경련의 정체성을 두고 “혁명정부는 기존 경제인들을 경제개발 선봉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제재건촉진회를 설립케 하고 여기 속한 기업인들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과 혜택을 받으면서 정부 개발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재벌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공적 프로세스 내에서 가동하는 일본 경단련 vs. 정치권 창구된 한국 전경련
일각에선 재벌 대기업도 목소리를 낼 창구로서 전경련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초 전경련의 모델은 일본의 경단련이었다. 아직도 경단련은 대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정부정책에 압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단련은 공적 프로세스 내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움직이는 전경련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진기 부경대 교수는 “일본 경단련은 공적 프로세스 내에서 가동한다. 경단련은 정책생태계 내의 정당한 주체인 반면 전경련은 공적 프로세스를 망가뜨려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 방위산업을 예로 들면서 “일본 정부 산하에 위원회가 많다. 방위산업의 경우 정부 위원회에 방위산업체 대표들이 들어가서 의견을 제시한다. 정책이 결정되기 전에 수많은 절차와 과정을 거친다. 시간은 오래걸리지만 부작용이 적고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과 경단련을 구성하는 재벌기업의 성격도 다르다. 일본의 재벌인 ‘자이바츠’는 전쟁 이후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상당부분 진척됐다. 김진기 교수는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기업을 일가족이 지배하는 건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한다. 일본 정부도 전후에 분권화가 진행됐다”면서 “도요타자동차 등 대부분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다.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라하더라도 계열사들이 거의 분리됐다”면서 “나중에 계열사들이 은행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다시 결합을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총수일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정책생태계 없는 한국, 전경련이 하루아침에 헤리티지 재단 못된다
전경련을 해체하고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같은 싱크탱크로 탈바꿈시키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것 역시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지금까지 전경련은 억지논리를 개발, 홍보해왔다”면서 “이는 시장경제를 창달하겠다는 전경련 설립 목적과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와서 헤리티지 재단처럼 전경련을 쇄신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또한 국회의원 보좌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주빌리은행 이사를 지낸 최병천 정책전문가는 “미국은 행정부, 정당, 싱크탱크, 시민사회가 조화롭게 정책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나라다.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등 정책생태계의 주체가 발전하려면 정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한국엔 정책생태계가 없어서 싱크탱크가 발전하기 어렵다. 지금 국책연구기관을 제외하면 싱크탱크는 전무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