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된 항공업계 오너 3세, LCC 경쟁·유가 상승 위기 속에 대처능력 주목
국내 항공업계 3세 경영이 막을 올렸다. 한진그룹에선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이 사직한 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이 올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한진그룹 내 조 부사장의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선 지난해 전략경영실 수장자리에 박세창 사장이 올랐다.
이에 업계에선 조 신임 사장과 박 사장 간 항공업계 주도권을 둔 샅바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 금리 인상, 국제 유가 상승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3세 경영인들이 노사문제와 저가항공사(LCC) 출혈경쟁 해결책을 제시해지 못한다면, 향후 생존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 75년생·외아들…공통점 많은 항공 3세들
한진그룹은 오는 11일부로 ‘2017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대한항공을 진두지휘해온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은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조 신임 사장 ‘원톱체제’로 재편됐다. 조 신임 사장은 지난해 한진그룹 핵심계열사인 진에어, 정석기업 등에서도 승진가도를 달렸다. 한진그룹 핵심계열사 요직을 모두 차지하면서, 차기 그룹 총수로서의 입지도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신임 사장이 부상하면서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과의 경쟁구도도 재점화하고 있다. 두 3세 경영인들은 국내 항공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그룹사의 유력한 차기 총수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많은 까닭이다.
두 사장 모두 1975년생 동갑내기다. 올해로 43세가 된 젊은 오너다. 총수 외아들로서 입사와 동시에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렸다는 점도 같다. 차기 그룹 수장자리를 노리는 전형적인 ‘재벌 3세 코스’를 밟고 있다는 평가다.
조 신임 사장은 2003년 한진정보통신 영업기획담당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대한항공 경영기획팀장과 자재부 총괄팀장, 여객사업본부장을 거쳐 경영전략본부장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대한항공 대표이사, 진에어 대표이사, 정석기업 이사 등 수많은 직함을 안았다.
박 사장은 조 신임 사장 보다 입사가 빠르다. 2002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뒤 금호타이어 부장과 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략경영담당 이사 등을 거쳤다. 2012년 1월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지난해 3월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략경영실 사장에 올랐다.
9일 대한항공 전 간부는 “지난해까지 조 신임 사장보다는 그룹 핵심부서인 그룹 전략경영실을 지휘하고 있는 박세창 사장의 그룹 내 영향력이 더 크다는 평이 나왔던 게 사실”이라며 “다만 땅콩회항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탈했고 조원태 부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올랐다. 올해가 두 오너 3세 경영능력을 평할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항공업계 가시밭길, 작은 패착이 위기 부를 수 있어
조원태 박세창 사장 모두 올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항공업계 전망이 잿빛이다. 특히 LCC 부상이 위협적이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LCC는 올해 공격적인 노선 확대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항공은 연내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노선을 확장하는 등 정기 노선을 50여개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 금리 인상이 예고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도 변수다. 지난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떨어진 기름값 덕을 톡톡히 봤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3분기까지 9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쌓았다. 아시아나는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2163억원을 거뒀다.
그러나 지난 4분기 실적 전망이 바닥이다. 9일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에 대해 4분기 대규모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투자의견 '중립(Hold)'을 유지하고 목표주가를 기존 3만4000원에서 2만7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방 연구원은 기말 원달러 환율이 전분기 대비 110원 정도 급등해 외화환산손실이 9000억원 정도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이를 감안해 세전 7500억원 정도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아시아나도 국제유가와 달러환율 상승으로 4분기에 수익성이 약화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한준 KT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3분기에는 항공업계에 유리한 영업환경이 조성됐지만 4분기에 영업환경이 항공업계에 불리하도록 바뀌었다”며 “달러환율이 상승했고 항공유가도 2015년 4분기보다 올라서 항공사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조원태 신임 사장은 꼬여버린 조종사 노사관계를 풀어야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지난달 조종사 노조가 부분파업에 들어가며 대한항공은 하루 평균 10억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조 신임 사장은 그 동안 조종사 노조와의 임금협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으나 지창훈 사장이 올해 물러난 만큼, 임금협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박세창 사장은 전략경영실 수장으로서 금호아시아그룹의 최대 숙원인 금호타이어 인수과제를 안고 있다. 금호타이어 매각 본입찰은 오는 12일 예정됐다. 여기에 아시아나가 100% 자회사인 에어서울을 지난해 출범시킨 가운데, 실적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 지도 관건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재벌 3세들은 현장에서 경영능력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보니 실제 리더십을 판가름할 가늠쇠도 찾기 어렵다”며 “노사관리나 위기 대처능력 등이 전문경영인보다 떨어지는 게 이들의 한계다. 그룹이 어려운 시기에 놓이면 이들의 실제 경영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