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2~3인자 상대 '최순실 지원 배경' 추궁…이재용 소환 임박한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 사진=뉴스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차장 장충기 사장이 9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삼성의 실질적 2인자와 3인자인 이들의 특검 출석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소환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부회장으로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은 이날 오전 15분 간격으로 특검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대치동 한 빌딩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 사장이 상관인 최 부회장보다 일찍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특검 사무실로 들어섰다. 특히 최 부회장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과정에 질문을 하던 취재진을 강하게 밀치는 등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특검팀은 두 사람을 상대로 삼성과 관련한 제3자 뇌물죄 의혹 전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순실씨에 대해 삼성의 특혜성 지원 배경에 대한 추궁이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필요할 경우 대질 조사도 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두 사람을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불렀지만 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확인될 경우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은 지난 2015년 8월 최씨가 독일에 설립한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220억원 규모의 승마훈련 지원 관련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0월까지 약 35억원을 송금했다. 또 최씨 딸 정유라씨의 말 구입 등을 위해 약 43억원을 삼성전자 독일법인을 통해 지출하기도 했다. 아울러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가량을 지원했다. 

 

특검팀은 삼성의 지원 배경에 국민연금공단의 석연치 않은 삼성물산 합병 지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지원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하고 삼성이 이에 대한 대가로 최순실씨를 지원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박근혜→삼성→최순실'로 이어지는 제3자 뇌물 연결고리 입증을 위해 화력을 모으고 있다. 삼성에서 특검팀의 최종 목표는 이 부회장이다. 특검팀은 삼성 수뇌부에 대한 줄소환을 통해 이 부회장의 개입 사실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수뇌부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이 부회장을 직접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한 차례 출석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는 박 대통령과 독대한 재벌 총수 중 한 사람으로 비공개로 불려 나가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가 박 대통령과의 독대 내용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집중돼 뇌물죄 관련 의혹에 대해선 사실상 조사를 받지 않았다. 삼성물산 합병의 최대 수혜자인 만큼 제3자 뇌물죄 의혹과 관련해 삼성의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있다고 특검팀은 ​보고 있다. 삼성으로선 이 부회장 방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해) 사후에 미래전략실로부터 보고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9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된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급). / 사진=뉴스1

삼성은 '박 대통령의 압박에 의해 자금을 지원한 것일 뿐'이라는 방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상 박 대통령 직권남용의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최씨 측에 대한 자금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강력 부인하고 있다. 특검에 불려 나온 삼성 관계자들 역시 이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2014년 9월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줄 것을 요구하고 2015년 7월 재차 승마 유망주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는 것이 삼성 측의 주장이다. 아울러 사전에 '비선 실세' 최씨가 연루된 것은 몰랐고 단순히 승마 유망주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으로 알았다는 입장이다. 또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지원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았기에 지원에 대한 대가성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팀은 대가성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줄소환에 앞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지원에 청와대 개입 사실을 확인해 놓은 상태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 이사장),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통해 청와대 개입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 간부를 통해 홍 전 본부장에 압력을 넣은 문 전 장관을 구속하기도 했다. 또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8일 입건했다. 특검은 관련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통해 박 대통령 개입 여부를 밝혀낸다는 방침이다.

 

박 대통령의 관련 내용을 확인할 증거는 다수 확보됐다.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결정적 물증으로 통하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업무일지에는 박 대통령의 삼성물산 합병 관련 지시사항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과의 독대를 앞두고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에도 삼성 후계구도에 대한 지원을 암시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안 발표 훨씬 이전부터 삼성 측을 지원한 정황도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 입장에선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시장에선 오래전부터 이 부회장이 많은 지분(42.19%)을 보유한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한 구 삼성물산 간 합병 시나리오가 나왔다. 이 경우 구 삼성물산 대비 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높을수록 이 부회장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지배력도 높아지게 되는 구조였다. 실제 합병 이전 이 부회장이 보유한 구 삼성물산 지분은 1.41%에 불과했다.

 

건설을 주력업종으로 하는 구 삼성물산은 2015년 들어 다른 대형 건설사들과 달리 실적 부진을 거듭했다. 이에 대해선 삼성이 고의적으로 주가를 낮게 관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이 과정에서 구 삼성물산의 지분을 대거 내다 팔았다. 같은 해 3월26일 11.43%에 달하던 구 삼성물산 지분은 같은 해 5월22일 9.54%까지 내려갔다. 주식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의 주식 매도는 주가 하락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국민연금은 합병안 발표 이후에는 이미 합병비율이 정해진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구 삼성물산 지분을 사들였다. 당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등의 반대로 합병안 통과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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