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등 수뇌부 위기가 실적에 되레 도움 '역설'…과감한 투자 미뤄져 메모리값 지켜내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 선전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 잠정 영업이익 9조2000억 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들이 줄줄이 특검 위기 앞에 흔들리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깜짝 실적을 냈다. 이같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은 반도체 분야의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 영업이익 9조2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6일 공시했다. 당초 시장에선 8조 원대 중후반대로 실적을 예상했었다.​ 매출은 53조 원으로 갤럭시노트7 사태에도 5년 연속 연매출 200조 원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삼성전자의 이번 호실적은 곧 반도체 실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D램 가격 상승세와 낸드시장 활황을 누리는 반도체 부문 말고는 특별히 호 실적을 기록할만한 사업부가 없다. 영업이익 절반 이상이 반도체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는 최순실‧박근혜 특검 수사로 역대 급 위기를 맞고 있다. 수사 초기만 해도 수사망을 피할 것으로 점쳐졌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연루 의혹이 하나씩 드러나며 조만간 소환될 상황에 처해졌다. 이처럼 지도부가 지난 4분기부터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호실적을 낸 것은 반도체 분야의 특성 때문이란 분석이 힘을 얻는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1차 청문회'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뉴스1

반도체 분야는 투자와 실적이 정확히 비례하지 않는 특이한 분야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시장상황이 좋아 많이 팔리면 많이 만들어낼수록 좋지만 반도체는 시장 상황이 좋다고 너무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떨어져 버린다. 삼성 최고의사결정권자 이재용 부회장이 위기에 처해지면서 투자가 제한적으로 이뤄진 게 아이러니하게도 도움이 됐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장비업체 상황을 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계획했던 투자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도부의 위기로 과감한 투자가 주춤한 것이 오히려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효과를 불러온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가격의 판단 기준이 되는 PC용 D램 DDR3 4GB 모듈이 25달러로 작년 11월보다 39% 급등했다. 불과 두달 사이 가격이 40%나 오른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그림이 가능한 것은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D램 부문에선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낸드 시장에선 36% 점유율로 2위 도시바(20%)와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들은 낸드에 과감히 투자해 따라잡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초격차를 만드는 투자로 시장우위를 지키는 삼성으로선 시장 상황에 맞게 투자 수위를 조절하는 전략이 가능하다.

정치적 외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특성도 반도체 부문 선전에 한 몫 했다. 수뇌부 위기로 몇몇 사업부 관계자들은 긴장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반도체 기술자들은 늘 똑같은 프로세스대로 자신의 몫을 묵묵히 수행했다.

한편 삼성전자의 호실적 흐름은 올해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부문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호황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삼성과 경쟁사들의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적다. 여기에 갤럭시S8이 성공해 IM부문도 실적개선을 이룬다면 유례없는 호실적도 가능하다는 것이 시장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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