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전도사 류철균 교수, 정유라 학점 특혜 혐의로 구속
류 교수는 박사 학위도 받기 전인 29세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에 영입됐다. 류 교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이인화라는 필명을 사용해 1993년 소설 ‘영원한 제국’을 출간했다. 정조의 독살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소설은 100만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류 교수는 2000년대부터 “문학의 미래는 게임에 있다”며 디지털 게임에 몰두해왔다. 2003년 디지털 스토리텔링 학회를 창립하고, 2005년부터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구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과장까지 지냈다. 최근엔 모바일 게임 및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도구를 개발하고, 인공지능 스토리 자동생성 프로그램 등을 연구했다.
류 교수의 게임 사랑은 남달랐다. 불혹의 나이에 온라인게임 리니지2에 빠져, 마우스를 클릭하다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평소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게임 사랑을 강조하며, 게임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게임업계에서도 류 교수는 유명 인물이었다. 200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은 ‘어린 애들이나 하는 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명 지식인이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이슈였다. 류 교수는 여러 게임관련 세미나에 초대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갔다.
류 교수는 지난 2005년 ‘한국형 디지털스토리텔링’이란 책도 출간했다. 2004년 리니지2에서 발생한 ‘바츠해방전쟁’을 모티브로 디지털스토리텔링에 대해 풀이한 책이다. 바츠해방전쟁은 2004년부터 약 4년간 20만명 이상의 유저가 참여한 온라인게임 내 전쟁이다. 국내 온라인게임의 사회성·정치성을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엔씨소프트 문화재단과 함께 국내 최초로 ‘게임사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당시 발표회에서 “게임은 한류 수출 콘텐츠의 핵심이고, 현재 게이머의 수가 20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사회가 공인하는 언어의 지위를 아직 갖지 못했다”며 게임사전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류 교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 나갔다. 지난해 11월에는 스토리헬퍼 후속인 스토리타블로를 업계에 선보였다. 스토리헬퍼는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이화여대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소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3년간 공동으로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3년 7월 첫 선을 보였으며, 스토리텔링 지원 도구로서는 국내 최초로 개발됐다. 영화·소설·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 등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아이디어 도출과 스토리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한다.
당시 류 교수는 스토리헬퍼 제작 배경으로 “국내 스토리텔링 저작도구는 스토리헬퍼가 유일했다”며 “이미지 저작 기술, 사용자 협업형 콘텐츠 저작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저작도구는 개발이 미비했다”고 밝혔다.
평소 들인 시간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임세상을 예찬해 왔던 류 교수가 최순실 게이트에 얽혀 긴급체포됐다. 최순실씨 딸인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다. 류 교수는 차은택 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청년희망재단 이사로 재직하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후 이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류 교수는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학점 특혜가 들통날까 봐 뒤늦게 조교를 동원해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류 교수는 조교들이 지시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논문 심사권한을 내세워 답안지 대리작성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 논문 심사나 학계 활동 등에서 불이익을 줄 수도 있음을 거론하며 특검 조사를 앞두고 조교들의 입막음까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황이 알려지자, 게임업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류 교수는 평소 공정한 기회를 강조해 왔다. 스토리헬퍼 역시 국내 콘텐츠 역량 강화를 위해 무료로 제공한 프로그램이다. 그랬던 그가 비선실세와 협력하고, 특혜가 드러나자 상대적 약자인 조교들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다.
류 교수가 구속되면서, 개정·증보판을 예고한 게임사전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류 교수는 특검이 파악한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에는 이름을 날린 학자가 많지 않다. 그나마 류철균 교수가 게임 전도사로서 게임의 유용함에 대해 설파해왔다”며 “이번 류 교수 구속으로 게임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다시금 높아질까 걱정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