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생보사, 면피성 행태에 비난 고조…교보생명은 일부만 지급키로해 논란 키워

금융소비자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가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생명보험사 자살보험금 지급을 촉구하는 모습. / 사진=뉴스1

금융당국과 생명보험사가 미지급 자살보험금 논란을 풀 수 없는 쟁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생보사는 미지급된 자살보험금 일부를 지급하거나 지급 결정을 논의해 보겠다는 내용만 전하고 있다. '전액지급'은 논외다. 금융감독원은 생보사 징계 방침은 내세웠지만 전액지급 명령은 내릴 입장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액지급을 생보사에 요구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두 조직 모두 '자살보험금 전액지급' 논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법적으로 문제될 일은 피하겠다는 식이다. ​이렇게 가면 지급 논란을 풀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일 생보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이달 중 자살사망보험금 일부를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전 문제가 될 수 있는 자살보험금 지급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은 이 결정에 따라 2011년 1월 24일 이후 청구된 자살보험금을 이달 중 지급할 예정이다. 지급 규모는 200억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 미지급액 가운데 20%에 해당한다.

교보생명은 "기초서류 준수 의무(약관 준수 의무)가 보험업법에 적용된 때가 2011년이다. 이사들을 설득해 100% 찬성을 얻었다"며 "금융 당국의 제재와 상관 없이 이달 중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삼성·교보·한화생명에 재해특약에 기재된 대로 2년이 지난 뒤 자살해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약관을 어긴 이유로 제재 통보를 한 바 있다. 영업 일부 정지와 인허가 등록 취소, 최고경영자(CEO) 해임 권고 등 징계범위가 넓은 통보였다는 게 금감원 보험준법검사국 입장이다.

이에 교보생명은 금감원이 징계 사유로 내세운 '약관 준수 의무'로 인해 이사회를 개최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한 결과 '2011년 이후 발생한 자살사망보험금은 지급한다'는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 생명보험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한 번도 전액 지급을 요구한 적도 없고 그런 의사를 나타낸 적도 없다"며 "대법원에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판결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라리 금감원이 전액지급하라는 통보를 내리면 생보사에서 어쩔 수 없이 다 지급하고 이 논란은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보험회사에 대하여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며 "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해 지급 결정을 내리는 건 보험사 판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제재 통보 조치는 보험업법에서 '기초서류(약관) 준수 위반' 관련 규정을 보험사가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보사 관계자는 "표면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전액 지급하라는) 속내가 있는 것"이라며 "금감원이 책임을 피해 가면서 생보사를 압박하지만 이렇게 하면 생보사에선 지급 결정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교보생명이 자살보험금 일부를 지급하기로 한 것을 두고 '백기'가 아닌 금융당국과 국민을 우롱한 조치라고 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상법 관련 전문가는 "이번 조치로 문제를 피해가려고 하지만 결국 액수가 적어 소비자 피해 구제에 미흡한 수준"이라며 "고객 간 형평성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도 생보사가 금감원에 전액 지급 요구 결정을 내려달라는 발언에 대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며 "무슨 소리인 들 못하겠나. 보험사는 고객 신뢰와 자살한 가족을 둔 피해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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