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은행권 고객 뺏길라 '긴장'…은산분리 규제 완화 등 과제 남아
은행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달 말쯤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24시간, 365일 영업이 가능한, 지점 없는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존 금융권은 제도적 측면에서 미비한 점만 강화하면 인터넷전문은행이 거대 은행이 주름잡던 금융환경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금융위원회로부터 본인가를 받은 K뱅크가 빠르면 이달 말에 출범할 예정이다. 카카오뱅크 인터넷전문은행도 예비인가를 받은 상태다. 이달 초 금융위 본인가를 신청하면 올해 상반기 중 공식 출범할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무점포 은행'을 특징으로 한다. 금융이 아닌 정보기술(IT)을 주축으로 지점 없이 모든 업무를 인터넷과 모바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자동화기기로 처리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로 굳어진 기존 은행 영업시간 관행이 깨지는 셈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계좌개설이나 대출 등 은행업무를 24시간 365일 비대면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10분 안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소액 간편 대출을 활용하면 클릭 한 번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
KT 주도인 K뱅크는 빅데이터 기반에 따라 대출 심사를 할 계획이다. 통신요금 납부정보를 활용한 간편심사 소액대출 등도 제시한 상태다.
특히 K뱅크는 GS25 편의점에 설치된 현금지급기나 현금자동입출금기를 오프라인 지점으로 대신할 계획이다.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즉석에서 체크카드도 발급받을 수 있는 '스마트 ATM'을 개발 중이다. 지점 수만 1만500개에 달하는 GS25 편의점이 K뱅크 주요 지점으로 운영돼 소비자 편의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심성훈 K뱅크 은행장은 지난달 본인가 때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혁신과 차별화로 10년 후 자산 15조원 규모의 넘버원 모바일 은행이 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뱅크도 올 상반기 중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카오톡을 주요 영업채널로 활용해 영업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카카오뱅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형태의 이자를 선택하고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내 맘대로 선택하는 이자'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예금 이자를 현금 또는 음악 스트리밍 포인트, 카카오 이모티콘, 넷마블 아이템 중 하나로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대화하듯 쉽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간편 송금' 서비스도 출시하기로 했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에 긴장한 은행권
인터넷전문은행은 점포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점포 운영,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고객에게 시공간 제약을 탈피한 서비스, 대출금리·수수료 인하 혜택을 부여해 기존 은행 고객을 유인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은행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에 촉각을 세우고 핀테크 분야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미 각각 위비뱅크와 써니뱅크 등 모바일 뱅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비대면 은행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키오스크를 확대해 인터넷은행과 경쟁하는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디지털 키오스크는 핀테크 기술을 활용한 셀프뱅킹 창구다. 공휴일에도 계좌 개설, 체크카드 발급, 인터넷 뱅킹이 가능하다. 총 107가지 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KB국민은행은 모바일플랫폼 '리브'를 앞세워 '핀테크 경쟁'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앞으로 엘지유플러스(LGU+) 등 다른 통신업계와 업무 협조도 강화할 예정이다.
KEB하나은행 지난해 11월 간단한 문자 입력과 음성인식만으로 송금이 가능한 텍스트뱅킹 서비스를 출시했다. 에스케이티(SKT)와 연계한 생활 밀착형 모바일 생활금융 플랫폼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농협은행장도 홍채 등 생체인증서비스를 은행서비스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단순화할 방침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등 풀어야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은행에서 하는 서비스를 모바일 등에서 하는 것 외에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지적사항이다. 시중 은행 고객을 끌어당기기에 핵심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규제 완화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담은 은행법 개정안 2건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3건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비금융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주식 34%(의결권 기준)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은행 수준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자본 출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에 막히게 되면 자본력이 충분한 기업이 증자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인터넷전문은행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은산분리 규제를 풀지 않고 서비스를 시작하면 자칫 반쪽짜리 출범식을 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에서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우려로 인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가 지난해 11월 법안소위원회를 열어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비금융자본은 은행의 주식을 10%(의결권 있는 지분은 4%)까지만 보유할 수 있게 돼 있다. 과거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사용했던 전례를 방지하기 위해 은산분리를 명문화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K뱅크를 이끌고 있는 KT의 지분율은 8%에 그치고 있다. KT가 주도하는 은행인데 의결권을 4%밖에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IT기업인 카카오 지분은 10%에 그치고 있다. IT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 등 주도권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다만 은행권은 은산분리 규제가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이 본격 시작하는 시점에서 규제 완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금융과 IT기술을 접목한 핀테크발전으로 금융시장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도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법적 뒷받침이 하루라도 빨리 정비되는 것이 인터넷 전문은행 성공의 핵심 관건"이라고 강조하며 국회의 개정법안 처리를 촉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