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당시에도 불공정 합병비율 논란…박 대통령 "관심 있었지만 지시는 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를 갖고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 사진=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특혜 지원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강력 부인했다. 그는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빠르게 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특검팀이 삼성 특혜지원 의혹과 관련해 자신에 대한 제3자 뇌물죄 수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그 누구를 봐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며 "(그런 지시를 내린 기억도) 제 머릿속에 아예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물산 합병 문제는 당시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였다"며 "(국민들도) 삼성 같은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이 헤지펀드 공격을 받아 합병이 무산되면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굉장히 큰 손해라는 생각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저도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국민연금이 잘 대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연히 국민연금이나 이런 데에서는 챙기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것은 국가에 올바른 정책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이 회사를 도와주라' 그렇게 지시한 적은 없다. 그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삼성물산 합병은 거센 논란이 있었다.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간 합병비율(1 대 0.35)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구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주된 합병 반대 논리도 합병비율의 불공정함이었다. 당시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자체 계산한 합병 비율은 실제 합병비율보다 구 삼성물산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됐다. 특히 국민연금 내부 리서치팀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적정 합병비율을 '1 대 0.9530'으로 산정했다. 실제 합병비율에 비해 구 삼성물산 주가가 2.7배 이상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ISS는 이 같은 이유로 최종적으로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 리서치팀이 산정한 적정 합병비율은 '1 대 0.4634'였다. 지난해 5월 서울고법도 일성신약 등 구 삼성물산 일부 주주들이 제기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사건에서 주식매수 가격을 기존 삼성이 제시한 금액보다 16% 이상 높게 결정했다.

 

합병비율이 중요했던 이유는 결과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접적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총수일가는 제일모직 지분 42.19%를 보유한데 반해 구 삼성물산 지분은 1.41%를 갖고 있었다. 제일모직 주식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될수록 합병 회사에서 총수일가의 지분이 더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이는 구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더욱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특혜 지원은 단순히 '합병 찬성 결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합병 이전 구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관리됐고 여기에 국민연금이 지원한 정황도 드러난 상황이다. 총수일가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합병 안 발표 이전에 구 삼성물산 경영진들이 의도적 소극 경영을 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여기에 국민연금도 가세해 구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해 주가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 사진=뉴스1

박 대통령의 모르쇠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재 특검의 칼날은 빠르게 박 대통령을 향해 가고 있다. 특검 조사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외압 사실을 시인했다. 이들은 그동안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외압 사실을 강하게 부인해왔다.

 

특검팀은 지난달 31일 문 전 장관을 구속한 후 연일 재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박 대통령 등 청와대의 개입 여부이다. 특검팀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문 전 장관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통해 삼성 특혜 지원 지시가 내려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문 전 장관은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대응 미숙으로 경질된 후 4개월 만에 산하기관인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임명돼 거센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문 전 장관이 복지부 장관에서 경질된 것은 지난해 8월초로 이는 삼성물산 합병안이 통과된 지 20여 일 뒤이다. 그런 그가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임명된 배경을 놓고 삼성 특혜 지원에 대한 '공로'라는 의혹이 뒤늦게 불거진 상황이다.

 

특검팀은 2일에도 문 전 장관과 안 전 수석을 불러 박 대통령 개입 여부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을 통해 확보한 안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삼성 합병 메모가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두 사람에 대한 대질심문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삼성의 최순실씨 특혜 지원 의혹에 대한 조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을 상대로 특혜 지원 배경을 조사하고 있다. 최근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총괄 사장을 조사한 특검은 조만간 이번 특혜 지원과 관련된 삼성 고위 관계자들을 잇달아 소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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