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군납 돼지 사육 농가 수사
일선 군 장병의 밥상에 오르는 돼지고기를 대량 납품하는 일부 돼지 사육 농가가 품질이 낮은 ‘잔반 돼지’를 섞어 군부대에 납품했다는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군납 돼지고기의 출하 가격이 일반 시중 가격보다 높은 반면, 정상 사료가 아닌 음식물 찌꺼기로 키운 잔반 돼지는 생산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아 농가 입장에서는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축산농협과 축산업계 관계자 등을 취재한 결과, 경찰은 최근 지역 축산농협을 통해 군납하는 일부 돼지 사육 농가가 음식물 찌꺼기로 키운 소위 잔반 돼지를 도축해 납품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경찰은 군납 계약 농가가 납품할 돼지를 직접 사육해야 한다는 ‘군납 지침’을 어기고, 다른 농가에서 사육한 잔반 돼지를 직접 길러 생산한 것처럼 꾸며 납품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경기도 일대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 3~4곳이 이런 방식으로 잔반 돼지를 불법적으로 군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해당 농가를 압수수색하는 한편, 해당 농가를 계약 생산 농가로 지정해 군납하도록 한 지역 축산농협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잔반 돼지를 불법 납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농가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찰 소환조사를 받은 수도권 ○○축산농협 관계자는 “군납 돼지고기는 군부대 영관급 장교가 입회해 도축하고, 질이 안 좋은 돼지고기는 등급 판정 과정에서 걸러지는 만큼 잔반 돼지고기가 군으로 실제 납품되기는 쉽지 않을 것”면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해당 농가의 업주도 잔반 돼지를 납품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축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잔반 돼지고기의 군납은 공공연한 비밀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돼지 사육 농가 업주는 “일부 돼지 사육 농가가 까다로운 군납 계약을 맺기 위해 자신의 농가에서는 정상적인 사료로 직접 돼지를 키운 것처럼 말하지만, 다른 농가에서 키운 잔반 돼지를 사들여 도축해 납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잔반 돼지는 사료값이 거의 들지 않는데다, 잔반 처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비용을 받는 만큼 군납 농가에게는 엄청난 폭리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잔반 돼지를 사육하고 유통하는 것 자체가 법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육질이 떨어져 ‘등급 외’ 판정을 받고, 위생 문제에 대한 인식도 나쁜 만큼 시장 가격은 낮게 형성돼 있다.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적정 출하(110~115㎏) 때까지 투입되는 돼지 1마리에 투입되는 사료는 평균 300㎏ 정도로, 사료 가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통상 15만원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잔반 돼지고기는 사료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오히려 1톤당 3만원 정도의 잔반 처리 비용을 별도로 농가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군납 돼지고기의 경우 사육 관리 등이 철저히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출하 가격이 45만원 선(110㎏ 기준)으로 일반적인출하 가격(35만원 선)보다는 상대적으로 납품 단가가 높다. 군당국은 군납 계약 생산 농가에 대해서는 3개월치 납품 선수금을 사전에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저가의 잔반 돼지를 사육하고 잔반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농가사로서는 정상적인 사료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것에 비해 부당 이득을 챙길 수 있다.
돼지 사육 농가를 지원·관리하는 농협 등 관련 기관이 돼지고기의 생산 이력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일부 농가가가 고의로 저질의 돼지고기를 섞어 납품할 경우 검증이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군납은 농협중앙회와 방위사업청과 협의 하에 지역 36개 축산농협이 일선 군부대와 납품 계약을 맺고 지역 축산농협 소속 조합원들의 신청을 받아 계약 생산 농가를 지정한다. 군납 매뉴얼에 따라 군납 돼지의 사육과 관리는 철저하게 유지돼야 하지만 생산 농가의 말만 믿을 수밖에 없다.
지역 축산농협 관계자는 “정해진 메뉴얼과 다르게 외부에서 사육한 돼지를 계획 생산 농가가 사들여 납품한다고 해도 농협 입장에서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다”면서 “계획 생산 농가의 조합원을 신뢰하고 납품을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