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서 10조원 대기업 집단으로 우뚝…수직계열화 탓 경제민주화 표적 가능성도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닭고기가 화두가 됐다. 때마침 올 한해 식품업계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업체도 닭고기 전문기업이다. 하림 창업자인 김홍국 회장은 자수성가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2016년 언론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오너였다.
다만 하림이 본격적으로 몸집불리기에 나서면서 견제구도 많아졌다. 김 회장으로서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한해였던 셈이다. 축산을 중심으로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까닭에 향후 경제민주화 국면에서 새로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림의 대기업 집단 편입 가시화는 식품업계를 넘어 재계의 관심거리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하림의 자산총액은 10조원에 육박한다. KCC, 코오롱, 이랜드, 하이트진로, 카카오 등 유력기업들이 하림보다 아래 순위에 있다.
몸집불리기에도 가속도가 붙은 형국이다. 4월 하림은 NS홈쇼핑 자회사 엔바이콘을 통해 옛 양재화물터미널부지(파이시티)를 4525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NS홈쇼핑은 하림이 농축산 제품을 효과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현재 하림은 닭고기와 가축 사료 등을 포함해 농장, 육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농축산 사업 부문 전 단계를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를 구축해놨다. 파이시티 부지에 유통센터가 조성되면 하림이 야금야금 보폭을 넓히고 있는 식품분야까지 사업 확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림의 유통망 확장은 온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9일 하림과 위메프는 JBP(Joint Business Plan)을 체결하고 상품 및 서비스 강화를 포함한 전략적 협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JBP란 제조사와 유통사가 함께 상품 기획과 판매 등 마케팅 활동을 포함해 시장 분석과 전략까지 공동으로 실행하는 기업 간 제휴 파트너십을 일컫는 말이다. 이 체결 덕에 하림은 전략상품군인 무항생제 닭고기와 냉동육의 온라인 판매 채널을 확보하게 됐다.
앞서 9월 하림은 온라인 쇼핑몰 하림마켓을 전면개편하며 ‘매장 배송 서비스’도 시작했다. 유료로 매장 발송 서비스를 신청하면 해당 지역권에 있는 대리점에서 당일 배송을 진행하는 배송 서비스다.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등에서 시작된 배송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시장지배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모양새다.
이 덕에 김홍국(59) 회장은 올해 내내 언론에 자수성가 성공신화의 대표적 인물로 등장했다. 1957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병아리 10마리에서 시작해 사업을 확장하며 재벌을 눈앞에 둔 종합식품기업을 일궈낸 인물이다. 하림식품의 설립시기가 1986년이니 만 30년 만에 대기업 회장이 됐다.
상복도 터졌다. 김 회장은 지난달 3일 서울시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EY 한국 최우수 기업가상(EY Entrepreneur of the Year)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마스터상을 수상했다. 1986년 미국에서 시작된 EY상은 60여 개 국가 145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글로벌 경영대상이다.
지난해 마스터상 수상자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었다. 시대의 최첨단을 이끌어가는 젊은 IT기업가에 이어 양계장으로 시작해 외길을 걸어온 노련한 축산기업가가 연이어 같은 상을 받게 된 셈이다.
재벌급 기업이 된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그만큼 견제도 늘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상호출자·채무보증이 제한되는 대기업집단 지정 자산 기준을 8년 만에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인다고 밝혔다. 기준이 늘면서 혜택을 본 기업이 하림과 카카오, 셀트리온 등이다.
당시 국내 유력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하림 등 제외된 업체도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라며 “대기업 민원 들어주기”라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경제민주화 국면에서 하림이 새로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장 하림에 닥친 사회적 이슈는 역시 AI다. 하지만 하림에 불리한 이슈는 아니라는 해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 견제구도 역시 많아지고 있다.
19일 정부는 AI로 2000만 마리가 넘는 닭·오리가 살처분 되는 탓에 달걀값 폭등하자 산란계 종계와 달걀 수입 등 수급안정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유통업계에 항공운송비 지원, 관세(27%) 제외, 검사기간 단축 등을 통해 달걀 수입을 확대키로 했다. 당장 달걀 농가의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초선‧비례대표)은 22일 “정부가 달걀 수입을 추진한다면 껍질이 붙어 있는 생달걀보다 껍질을 벗겨낸 액란 상태나 달걀 노른자위, 또는 1차 가공을 거친 달걀 등이 제과·제빵용, 가공식품 원료용으로 많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며 “가공용 달걀 시장을 외국산에 내주는 계기가 돼서 계란농장에 큰 타격을 주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그 다음이다. 김 의원은 계란농장이 무너지면 하림과 같은 계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체 육계 농가의 90%가량이 계열기업의 닭을 위탁 사육하고 사육비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AI 파동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닭고기와 달걀 계열화 사업을 추진하는 대기업”이라며 “이제 이들 기업이 고통과 비용 일부를 부담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림의 주가가 AI 파동 국면에서 되레 오르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6일 4400원에 거래되던 하림 주가는 29일 4915원으로 마감했다. 20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는 와중에 국내 대표적 닭고기 기업의 주가가 10% 이상 올라버린 셈이다.
오경석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AI로 인한) 피해는 산란계에 집중돼 육계를 주로 다루는 닭고기 가공업체에는 아직까지 큰 영향이 없다”며 되레 “최근 3년간 공급과잉 현상으로 닭고기 가격이 하락추세를 보여 왔다. 공급과잉 해소로 인한 이익개선 기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하림은 26일 AI 국면에서 닭고기 소비촉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닭 5만 마리(시가 1억3000만원 상당)를 익산 행복나눔마켓·뱅크에 기탁했다. 기탁한 생닭은 사회복지시설과 저소득 가정, 전북지역 푸드뱅크 등에 지원한다. 익산은 앞서 밝혔듯 김홍국 회장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