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중심 사무국 주도 자체개혁안에 반응 '싸늘'…회원사 잇단 탈퇴에 차기 회장 후보도 안 나서
주요 그룹들의 탈퇴 선언으로 위기에 빠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체 개혁안을 둘러싼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회원사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개혁안을 실천할 후임 회장 인선도 난관에 봉착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28일 공개한 신년사를 통해 "전경련도 여러 가지 일들도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렸다.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엄중한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전경련은 국민적인 여망을 반영한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도록 하겠다"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국민께 사랑받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허 회장은 하루 전인 27일엔 회원사들에게 서신을 통해 "최근 전경련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회원 여러분께 많은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사과했다. 그는 내년 2월 임기 만료와 함께 이승철 상근부회장과 함께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재계에선 허 회장의 사과가 너무 늦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논란이 불거지는 지난 9월부터 허 회장은 최근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사이 이승철 부회장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발적 모금'이었다는 거짓 주장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 기간 전경련은 '정경유착 통로'로 지목되며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국회에선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들이 전경련 해체를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전경련 해체 결의안까지 국회에 제출됐다. 시민사회 역시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했다.
허 회장은 지난 6일에서야 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있다는 것은 회장으로서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 입장을 처음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가 힘든 것은 한국적인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날 삼성과 SK는 전격적으로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
전경련은 재계 1위와 3위 그룹이 탈퇴를 선언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승철 부회장이 이끄는 사무국을 중심으로 자체 개선방안 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허 회장이 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서 10대 그룹에 회의 참석을 부탁했으나 대부분 그룹이 참석을 거부했다. 한 재계단체 관계자는 "전경련에 대한 여론이 최악인 상황에서 엮이지 말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그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사무국이 '개혁'을 주도하는 상황을 누가 믿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삼성과 SK의 탈퇴 선언 후 회원사들의 탈퇴 행렬을 계속되고 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금융 공기업들은 지난 12일 전경련에 탈퇴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다. 2주가량 잠잠하던 가운데 재계 4위 LG그룹이 지난 27일 전격적으로 탈퇴 의사를 전경련에 전했다. LG는 "2017년부터 전경련 회원사로서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며 회비 또한 납부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전경련 측에 이 같은 방침을 정식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재계 안팎에선 LG의 전격적 탈퇴를 의외로 받아들였다. 구본무 회장이 지난 6일 청문회에서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의 변환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경련 해체엔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의원들의 거듭된 요청에 전경련 탈퇴를 약속했다.
이번 LG의 탈퇴 의사 전달로 이미 탈퇴 입장을 분명히 한 삼성과 SK도 내년 초 전경련에 탈퇴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4대 그룹 중 현대차그룹 한 곳만 전경련에 남게 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기업들의 탈퇴가 연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한 전경련 관계자는 "탈퇴 시점을 고민 중인 회원사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어렵게 내년 2월 총회에서 자체 개혁안이 도출된다고 해도 전경련이 이를 실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전경련은 허 회장 후임을 물색 중이지만 그룹들의 외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계에선 지금과 같은 여론에선 전경련 회장 자리가 '독이 든 성배'도 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5대 그룹 관계자는 "회원사와 외부의 기준을 동시에 맞출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날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전경련이 자체 개혁에 실패할 경우 해체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전경련 해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위원회 간사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논의 없이)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