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백형록 기싸움에 임단협 길 잃어…“정기선 승계 원하면 노사갈등 외면하지 말아야”

현대중공업 임단협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내년에도 노조 파업이 불거질 시 그룹 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 왼쪽부터 정기선 전무, 백형록 위원장, 권오갑 부회장. / 사진=시사저널e
올해 현대중공업 키워드는 ‘슬림(slim)화’ 였다. 회사는 쪼개고 인력은 줄여 비용절감을 위해 애썼다. 수주급감에 먹거리가 줄어든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누적 영업이익 1조204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서 꼽는 내년 현대중공업 키워드는 ‘사람’이다. 주인 없는 회사인 대우조선, 이재용 부회장 그늘 아래 있는 삼성중공업과 달리 현대중공업은 임원 간 이해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결국 정몽준 대주주 아들 정기선 전무, 그룹 수장에 오른 권오갑 부회장, 강성 노조를 이끄는 백형록 위원장 간 알력 다툼이 내년 사운을 결정할 전망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매년 연말 지급되는 성과급을 올해 과장급 이상 희망자에 한해 지급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부분 대리급 이하인 노조원의 경우 임금·단체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성과급 기준은 지난 2015년과 비슷한 수준인 185%를 적용키로 했다.

노조는 사측이 임단협과 무관하게 성과급 상한선을 185%로 자의적으로 설정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조는 약정임금 250% 이상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내년 임단협 결과에 따라 성과급 액수가 변경되면 소급 지급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사측이 협의 없는 성과급 지급으로 사측이 노조 낸 분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이 양측 수장들의 의도된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이 표면적으로 ‘쩐의 전쟁’이지만, 사실상 노사 양 수장 간의 협상 주도권을 둔 알력 다툼이라는 얘기다.

현대중공업 노조 수장은 지난해 10월 정병모 체제에서 백형록 위원장으로 재편됐다. 그룹은 올해 10월 대표이사 사장에서 승진한 권오갑 부회장이 최길선 전 회장에 이어 배턴을 넘겨받았다.

28일 현대중공업 전(前) 상무는 “권오갑과 백형록 모두 현대중공업에서 평생을 근무한 ‘현대맨’이다. 조직 내 받는 신임이 둘 다 높은 상태”라며 “그런 두 사람이 그룹사와 노조를 이끄는 자리에 올랐으니 오히려 대화가 더 힘들어졌다. 각자의 영향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임단협에서 쉽게 양보할 수는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노사 수장 간 불통(不通)이 그룹 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는 임단협이 타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권오갑 부회장이 직접 나와 담판을 벌이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은 간사 간 타협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탓에 내년 금속노조 가입을 확정지은 노조가 ‘줄 파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내년 연간 수주 목표액을 올해 수정된 목표치인 95억달러 수준으로 예고했다. 지난해보다 보수적인 목표다. 내년 수주 형편도 올해만큼 어려울 것이란 분석 탓이다. 올해도 노조 파업에 애를 먹은 현대중공업이, 내년 초부터 파업에 시달릴 경우 이 소극적인 목표치 달성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기선 전무의 역할론이 대두된다. 정 전무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의 장남으로 차기 현대중공업의 경영을 이끌 후계자로 꼽힌다. 현재 직책은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영업총괄부문장이다. 그룹 내 총괄적인 사업재편 및 대외활동은 권오갑 부회장이, 수주 등 대내적인 영업일선은 정 전무가 챙기는 구조다.

정 전무가 대형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활동이 향후 승계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업에 국한된 경영행보를 보이다가 수주난이 도리어 심화되는 상황에 직면할 시, 권오갑 체제를 이어받을 명분이 없어지는 역풍을 얻어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에 정 전무가 권오갑과 백형록 간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몽준 대주주의 복심으로 불리는 권오갑과 반(反) 족벌경영을 외치는 백형록 양측에 정 전무 스킨십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 전무가 내년 대외적인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는 얘기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대중공업 중간관리자, CEO, 노동자 모두 겉으로만 회사 사정을 걱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유가가 상승하면 다시 과거의 영화를 저절로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갈등상황이) 반복되면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임직원 모두 자기 밥 그릇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 노동개혁, 기술개발 전략이 나와야 한다”며 “재벌 3세 경영인의 경우 전문 경영인으로부터 노사 관리 노하우 등을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노사 갈등을 외면해서는 노조 내 불신만 더 키워 그룹 위기를 자초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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