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계열화 완성…제1고로 사고·업계 비판 등 과제 산적
현대제철이 고로를 짓기 전 포스코는 생산한 조강(강철 제조공정으로 만들어진 강괴로 판 ·봉 등을 만드는 소재)을 철강 업계에 나눠 팔았다. 공급과 수요간 균형이 유지됐다. 구입한 조강으로 동국제강은 조선용 후판을 생산했다. 세아그룹은 특수강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렸다. 동부제철은 냉연제품 생산에 집중했다.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가 있었지만 국내 철강사들은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회사마다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현대제철은 2006년 업계 반발을 무릎쓰고 고로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10월 당진 1고로를 설립하고자 첫 삽을 떴다. 반대 여론은 거셌다. ‘과다 경쟁으로 한국 철강업계가 공멸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현대제철이 고로 조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당진 1고로는 2009년12월 완공됐다. 현대제철은 이듬해 고로를 가동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이때 우유철 제철사업 총괄사장을 내려보냈다. 그는 2010년 3월 현대제철 대표이사 겸 사장에 부임했다. 우 부회장은 일관제철소 건설을 총괄한 주역이었다. 그는 1고로 건설 중이던 2009년 3월 제철사업 총괄사장에 부임했다.
그가 부임한 뒤 현대제철은 시장 예상을 뒤엎고 1고로 조업이 빠르게 안정화했다. 고로는 가동 3개월 만에 하루 평균 쇳물 1만1650톤을 생산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현대제철은 고로 조업 첫 분기부터 흑자를 냈다. 2010년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200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39.7%, 156.3% 늘었다.
우 부회장은 2010년 11월 당진 제2고로, 2013년 9월 당진 제3고로까지 완성했다. 현대제철은 전기로 1200만톤을 포함해 연산 쇳물 2400만톤 규모 종합철강사로 도약했다.
우 부회장은 고로 3기 조업 안정화, 자동차강판 품질 향상, 특수강 사업 안착에 힘을 쏟았다. 현대제철은 사업 규모를 늘렸다. 포스코가 독점하던 자동차강판 시장에 뛰어들며 포문을 열었다. 2013년엔 현대하이스코의 냉연 부문을 분할 합병해 규모를 키웠다.
현대제철은 2010년 자동차용 강판 130만톤을 현대기아차에 공급했다. 2011년 공급량을 230만톤까지 늘렸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쇳물(현대제철)-자동차 강판(현대하이스코)-자동차(현대차)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포스코와 자동차강판 시장에서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현대제철은 특수강시장에도 뛰어 들었다. 현대제철은 2014년 10월 동부특수강을 인수했다. 그 전까지 포스코와 세아그룹이 양분하던 특수강시장은 현대제철 진출로 3강 체제로 개편됐다. 그만큼 경쟁은 치열해졌다.
우 부회장은 현대제철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시키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는 철강업계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인사다. 철강산업은 중후장대한 설비가 필요하다보니 한 업체가 모든 사업을 아우르기 힘든 구조다. 자연스레 업체별로 대표 제품군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대제철이 자동차강판, 특수강 등에 진출하면서 이 균형을 깼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조강과 조선용 후판을 생산하면서 공급과잉이 심해졌다”며 “현대제철의 수직계열화 탓에 영세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를 겪거나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 납품도 비난 받았다. 현대제철이 같은 그룹 계열사라는 특수관계를 이용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철강업계 관계자 다수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현대차그룹 계열사간 내비 거래에 대해 비난했다.
업계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대제철은 승승장구했다. 2014년 영업이익 1조439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도 대비 100.94%증가했다. 특히 2014년 4분기 영업이익률은 11.8%로 포스코를 앞질렀다. 지난해 7월엔 현대하이스코를 합병했다. 이로써 현대제철은 자산 30조원·매출 20조원 대형 철강사로 발돋움했다.
성과를 인정 받아 우 부회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2019년까지 현대제철 최고경영자를 맡을 듯하다. 우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창립기념회 기념사에서 "지난 10년 간 현대제철이 경쟁사들을 빠르게 추격하며 종합철강회사로서 양적 토대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 부회장은 "매출을 2020년 26조원, 2025년 31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종합소재에 기반을 둔 가치창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비철·비금속 분야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대표 사례가 당진 제철소 1고로 생산량 감소 사건이다. 5월 당진 1고로가 이상증세를 보였다. 고로 내부 온도가 내려가면서 쇳물이 다 녹지 못해 출선구를 막는 일이 벌어졌다. 이 탓에 하루 정상 조업량의 10분의1 수준인 1000톤가량으로 생산량이 떨어졌다.
이에 쇳물 생산량은 평소보다 40만톤 가량, 열연 등 주요 철강재 생산은 15만~20만톤 줄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고로 내부에 가스가 골고루 퍼지지 못해 열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다 녹지 못한 원자재들이 고로로 떨어져 출선구를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치로 막힌 부분을 깨고, 고열량의 코크스를 주입해 온도를 높이는 등 조치를 취했다. 그뒤 한달여 만인 6월 제1고로는 정상 가동했다.
고로는 통상 10~15년을 주기로 휴동기를 맞는다. 이번 1고로 사고는 건설된 지 7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다. 불안정한 쇳물 생산은 자동차강판 생산에 영향에 줄 수 있는 만큼 치명적인 사고였다. 일각에서는 제2고로와 제3고로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고로와 3고로 역시 1고로와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보다 1년가량 미뤄진 당진 특수강공장 양산과 안정화도 시급한 과제다. 특수강공장은 아직까지 설비상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현대제철은 연말까지 설비 문제를 해결하고 내년 자동차용 특수강 부품 일부 생산, 2018년 양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철강산업 업황 자체가 좋지 않은 게 고민이다. 중국이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조강생산량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다. 후판도 조선경기 침체 등으로 납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제철은 건설사 등에 후판을 납품하는 등 시장 다변화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