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달리 "규제개혁" 강조…시민 생명·안전·재산에 미칠 부작용에는 신중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기존 규제방식은 허가를 받기 전엔 일단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다.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규제개혁특별법(정식 명칭은 국민행복과 일자리 창출·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특별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규제의 신설을 억제하자는 게 취지다. 4차혁명 바람이 불면서 신산업 분야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규제를 둘러싼 한국의 정치지형을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은 규제완화를, 진보진영은 규제완화 반대, 규제강화를 외쳐왔다. 그러나 진보진영 일각에선 규제가 국가폭력의 하나로 사용돼 정경유착을 부추기고 4차혁명으로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고개를 든다. 본지는 정치지형별로 규제완화를 둘러싼 입장차를 짚어봤다.
◇보수, "일자리창출, 신산업발전 위해 규제개혁 시급"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경제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행정규제기본법을 제정한 이후 규제개선을 추진해왔다. 기본법을 3차례 개정하면서 존속기한이 도래한 규제와 규제사무목록을 국회에 제출할 것을 의무화했다. 규제영향분석서를 공표하고, 재검토 대상으로 설정된 규제에 대해서는 일몰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선 4차혁명시대를 맞아 규제개선을 가속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은 규제개혁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역대 정부와 현 정부 기간 중 규제의 수는 2003년 7855개에서 2014년 기준 14987개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규제개혁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개혁을 저출산・고령화 시대와 저성장에 대응하고 경제의 토양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일자리 창출에 방해가 되는 규제혁파, 국가경쟁력 향상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혁파,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혁파를 실천하기 위해 기존 행정규제기본법을 폐지하고 규제개혁을 최우선으로 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개혁특별법 7조에는 규제의 원칙으로 ‘원칙허용・예외금지’규정이 담겼다. 8조는 규제를 신설하거나 변경 또는 폐지한 경우 14일 이내에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을 의무화시켰다. 26조에선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도록 규정했다.
◇강한국가가 정경유착 불러…"규제권력 독점한 정부 권한 줄여야"
최근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규제가 국가폭력의 하나로 사용돼 정경유착을 부추기고 4차혁명으로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이런 입장은 벤처창업가들과 젊은층의 표심을 얻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전 국회의원 보좌관, 주빌리은행 이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을 역임한 최병천 정책전문가는 “지금까지 규제를 둘러싼 한국의 정치지형은 허구”라며 “한국에서 규제권력은 관료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막스베버도 국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폭력 독점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은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더욱 더 정권에 유착하려한다. 정경유착을 끊으려면 역설적으로 규제를 풀어 정부 권력을 줄여야한다”고 말했다.
규제완화가 드론이나 자율주행차량 등 신산업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다만 규제완화시 시민들의 생명, 안전, 재산에 미칠 부작용을 해결할 방안은 더 고민이 필요하다.
◇진보, “네거티브 규제, 금융부문에서 심각한 부작용 초래”
진보진영에선 신자유주의의 특징으로 규제완화, 민영화, 개방화 등을 꼽는다. 이 같은 관점에선 규제개혁특별법 등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친기업적, 친시장적 정책으로 분류된다. 진보는 특히 자본시장에서 규제완화의 부작용을 크게 우려한다.
김호균 명지대 경영학부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는 “2008년 당시 투기자본이 한국에 들어와서 질서를 어지럽혔다. 3년 전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사모펀드가 활동할 수 있게 규제를 풀었는데, 이게 전형적인 규제완화 정책”이라면서 “투기자본은 한번 들어오면 막기가 힘들다. FTA 문제가 있어서다. 자본을 대폭 허용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전세계적 추세는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인데 규제개혁특별법은 대세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산업 부문에서도 규제완화의 원칙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시민의 생명, 건강, 재산, 환경보호와 관련된 부분에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진보진영 일각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막스베버는 관료들이 자기이익을 추구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관료들을 고치는 방법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시민들의 민주적 압박에 의한 방식이어야 한다”면서 “국가권력을 줄이기 위해 관료가 독점한 규제권력을 풀어버리면 자본의 집중도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개혁센터 연구위원은 “규제 합리화가 핵심”이라면서 “시장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규제의 품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선 규제지체의 문제가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에선 규제의 틀이 산업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다. 모든 규제에서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기보단 신산업분야에서 집중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부문에선 규제수준을 강화하는 게 합리적 방향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