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난에 서울택시 가동률 58%…매출 안 느는데 준대형 세단 교체 수요↑
서울의 한 택시업체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박천식(62) 씨는 차고지에 들러 준대형 세단 현대차 그랜저를 몰고 도로에 나선다. 택시용 차량으로 주로 활용되는 현대차 쏘나타 등 중형 세단보다 운전이 수월하고 고객 선호도 또한 높다는 게 박 씨 설명이다. 박 씨는 “내 앞에 중형차인 쏘나타가 가고 뒤따라 내가 가면 택시를 잡던 손님은 내 차에 탄다”고 말했다.
중형 세단이 주류를 이뤘던 일반택시 시장에 준대형 세단 바람이 불고 있다. 택시기사는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고 택시 이용 고객은 같은 값에 넓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택시와 같은 온라인 투 오프라인(O20) 서비스 활성화로 대형 세단 택시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택시 차급 상향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에 택시 차량 평균 가동률이 60% 아래로 떨어진 택시업체가 준대형 세단 교체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자동차 업계와 택시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기아차 준대형 세단 K7은 개인택시 사업자 기준 1330대가 팔려 지난해 전체 판매량 759대보다 75% 증가했다. 올해 7월부터 개인택시로 본격 투입된 르노삼성 준대형 세단 SM7은 11월까지 133대가 팔렸다. 르노삼성 중형 세단 SM5의 택시 판매량이 올해 들어 11월까지 497대에 그친 것과 대조된다. 지난해 SM5는 택시 차량으로 915대가 나갔다.
현대차는 지난달 준대형 세단 신형 그랜저 출시와 동시에 택시 판매를 발표했다. 그동안 현대차가 신차 효과와 고급차 이미지 관리를 위해 준대형 세단 택시모델을 신차 출시 후 일정 시간이 지나고 판매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그랜저를 경험하게 하는 방법으로 택시를 선택했다는 게 현대차 설명이지만, 현대차가 준대형 택시 시장 성장을 손놓고 지켜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선 택시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기사난으로 택시 차량 평균 가동률이 58%로 떨어진 상황에서 신차 교체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서울지역 택시업체 한 관계자는 “준대형 택시를 선호하는 기사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주류 차종이었던 중형 세단은 차고지에서 쉬는 차량이 됐다”면서 “택시기사마저 줄어 회사로서는 인건비를 제외한 고정매출은 똑같은데 매출이 오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인택시기사 수가 줄고 있다. 서울 지역 기준 2002년 5만명 이하로 떨어진 택시기사 수는 2014년 3만명 수준으로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2인 1차제로 운행하는 법인택시 운행방식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나마도 준대형 택시로 기사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일선 택시업체들은 준대형 세단 확대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현대차 쏘나타 택시 모델 엔트리 트림 판매 가격이 1635만원인 반면 같은 회사 준대형 세단인 신형 그랜저 택시 모델 판매가격은 2560만원부터 시작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2220만원인 쏘나타 택시 모델 최고 사양 판매가격과 비교해도 신형 그랜저 택시 모델 엔트리 트림이 340만원 더 높다.
이밖에 카카오택시 블랙과 같은 O2O 서비스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택시가 확대하고 있는 것도 택시업계에는 부담이다. 현재 카카오택시 블랙을 통해 서울 시내에서 벤츠 E클래스가 90여대, 우버블랙을 통해 기아차 대형 세단 K9 70여대가 돌아다니고 있다.
서울시에 있는 한 택시업체 관계자는 “준대형 세단 택시 차량 도구비인 운송수익금 기준액을 중형 세단보다 평균 2만원 넘게 높여 받아 준대형 세단 선호 현상을 방어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오전·오후 합해 4만원에 불과한 도구비를 더 받는다고 해서 1000만원은 비싼 준대형 세단을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