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휴업·영업시간 규제 등 업무환경 개선 골자
#최씨는 면세점으로 일했던 시기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고인다. 최씨는 임신으로 배가 불렀으나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고생했다. 휴게실은 좁아 배를 잡고 바닥에 박스를 깔고 쉬었다. 생고생하다보니 아이는 출산예정일보다 20일 먼저 나왔다. 그 아이가 13살이다. 아이는 출근하는 최씨에게 “오늘도 늦죠? 내일 만나요”라고 인사한다. 밤 10시 넘어 집에 들어오다 보니 아이의 자는 얼굴을 보는 날이 더 많았다.
#백화점 26년차 점원 김씨는 하루 12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그러다보니 동료들은 오래 서 있으면 생기는 하지정맥류나 족저근막염에 시달린다. 일부 점원은 고객을 응대하느라 성대결절을 앓고 있다. 근무시간은 갈수록 늘어난다. 백화점 업계가오후 7시30분 폐점하고 매주 1회 휴점한 적 있다. 업계 경쟁이 심해지면서 백화점은 오후 8시 닫고 월 2회 휴점했다. 김씨는 "가족과 함께 보낸 주말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백화점·마트·면세점 등 유통업계 근로자들이 열악한 상황을 토로하며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7일 국회 ‘유통서비스노동자 노동실태와 법·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증언대회’에 모인 유통업체 근로자들은 각자 일하는 곳의 환경과 제도가 열악함을 설명하며 영업시간 단축, 의무휴업 도입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다수의 면세점이나 백화점 폐점시간이 8~9시로 점점 늦어지고 있어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은 정기 휴점을 강제하거나 영업시간을 규제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백화점의 일요일 영업을 규제한다. 일요일은 10시부터 18시 중 6시간만 영업하며 이를 위반하면 5만 파운드(약 74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한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일요일과 공휴일 백화점 영업을 금지한다.
국회는 지난달 23일 유통업체 근로자의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됐다. 법안 핵심내용은 근무시간 단축이다. ‘백화점과 시내면세점의 운영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8시까지로 제한한다’,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는 매주 일요일 혹은 일요일 외 다른 요일 하루를 의무휴업일로 지정한다’, ‘백화점은 매주 일요일 휴무, 시내면세점은 매월 일요일 중 하루를 휴무로 지정한다’ 등 새 조항이 포함됐다.
기존에 백화점·면세점의 운영시간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 이탓에 신세계백화점 스타필드 하남점은 저녁 9시까지 영업하고 있다. 두타면세점은 새벽 2시까지 영업하기도 했다. 지금도 자정까지 영업하고 있다.
면세점은 연중무휴다 보니 노동자의 휴식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면세점 점원은 “10년 넘게 면세점에서 일했는데 한 번도 면세점이 문을 닫은 것을 본 적없다”며 “주말에 쉬지 못해 친구들과 관계가 다 끊겼다”고 토로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업계 종사자들은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백화점 화장품 매장 점원은 “법안에 백화점 주 1회 휴점이 포함돼 직원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다”며 “그동안 백화점에서 일하며 출산·육아를 경험한 여성들은 늘 힘들어했다. 주1회라도 쉬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