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별 호·악재 엇갈려…경제 전반에는 소비위축 등 악영향

석유수출국기구(OPEC)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감산합의를 안건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 OPEC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에 합의했다. 이에 국제 유가는 연일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도 여러 산업에서 원유 감산에 의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 금리 인상까지 더해져 한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달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회를 열고 하루 최대 원유생산량을 3250만 배럴로 결정, 기존 생산량 대비 120만 배럴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석유가격 하락을 막고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 상황 개선을 위한 결정이었다.

지난 10일에는 OPEC에 가입하지 않은 러시아 등 11개 산유국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를 열고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55만8000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OPEC과 비OPEC 감산량을 합치면, 내년부터는 현재 일일 산유량의 약 2%에 해당하는 하루 약 175만8000배럴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들의 감산 합의는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며 6개월간 유효하다. 시장 상황에 따라 감산 조치는 추가로 연장될 수 있다. OPEC과 비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원유생산 감축에 합의한 것은 2001년 이후 처음이다.

국제유가는 산유국들의 과잉공급으로 2014년 초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해 올해 초에는 40달러 선까지 폭락, 위기의식을 느낀 OPEC과 다른 산유국들이 감산 조치를 논의해왔다. OPEC과 비OPEC의 감산 합의로 국제유가는 1년여 만에 최고치로 올라서 배럴당 50달러 선을 넘긴 상황이다.

OPEC과 비OPEC의 감산 합의가 실제로 이행될 경우, 세계 석유공급 과잉은 예상보다 빠른 내년 상반기부터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감산에서 제외된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생산차질 회복 가능성을 감안할 때 OPEC 전체 실질 원유감산량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OPEC 회원국들의 경제상황을 고려해 보면, 생산제한이 엄격하게 준수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실제로 OPEC이 과거 생산 제한을 시행했을 때도 그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산 규모가 큰 사우디,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에서는 저유가로 인한 재정적자와 정세불안에 시달리고 있어 산유량 확대를 통한 재정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감산합의는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OPEC 감산과 유가 상승에 가장 반기고 있는 곳은 정유업계다. 정유업계는 이미 올해 실적이 좋아 승진 인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실적 개선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유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정제 마진(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 유통 비용 등을 뺀 이익)은 최근 7달러 수준으로 견고하다.

유가 상승으로 업체들이 재고를 축적하게 되면 재고평가이익도 커진다. 정유사들이 사들인 원유는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대략 1개월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가격의 시차 효과 때문에 유가가 오를수록 이익이 높아진다.

그러나 세계 경제회복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유가 상승이 석유제품 소비에 악영향을 미쳐 중·장기적으로 정제마진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원유재고를 늘리고 국제 석유선물시장에서의 포지션 확대 등을 통해 중·장기적 정제마진 악화 가능성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 세계적인 업황 악화로 구조조정 몸살을 겪고 있는 조선업계도 해양플랜트 발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계에선 국제유가가 50달러 중후반대에서 안착될 경우 그 동안 미뤄진 해양플랜트 발주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2년간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올해는 단 한 건도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석유·가스 기업들의 수익성이 본격적으로 개선돼 2018년부터는 유·가스전 개발 지출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OPEC과 비OPEC 감산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유가 급등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도 있다”며 “국내 관련 산업의 해외 자원개발 진출은 면밀하게 검토돼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업과 건설업, 운수업 등 경제 및 내수와 관련한 업종은 유가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경기둔화가 여전히 진행형인 가운데 유가 상승세가 예상됨에 따라 경기에 민감한 항공업, 건설업, 운수업 등은 원가 상승부담까지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항공업계와 해운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으로 운임료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항공사의 경우, 어느정도는 유류할증료를 통해 보전할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까지 항공유 가격이 오르면 이를 탑승권 가격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여행 수요가 위축돼 산업 전반에 타격을 주게 된다. 공급 과잉 때문에 저가 운임 기조를 이어가고 있던 해운업계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오세신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 회복이 담보되지 않는 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둔화 기조를 장기화시켜 국내 소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최근 조류독감 확산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과 함께 유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급등이 예상된다. 이는 국내 소비위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에 재정적 수단을 통한 대응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