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정권 검은 거래, 최순실 사태로 민낯 드러내
“이번 정권에서 CJ는 힘들 겁니다. 거기서 만드는 영화 ‘광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고 여러모로 정권에서 마음에 안 들어 한답니다.” 박근혜 정권이 막 들어섰던 당시 한 재계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사실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무슨 대통령이 그런 걸로 기업을 마음에 안 들어 할까. 또 그렇다고 경영을 방해한다는 것은 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통령 뜻에 따라 이미경 부회장이 좀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참 의아한 일이었다.”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1차 청문회에서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이 같은 말은 약 4년 전 들었던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재계의 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더 유치했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는 한 마디로 경영진을 손봐야 하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최순실에게 돈을 갖다 바친 재벌들은 국민들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직원들에겐 돈 10만원 쓰기도 아까워 하면서 공식 직함도 없는 강남 아줌마 한 마디에 수십 억 원 씩 퍼붓는 행동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재계 총수들은 이래저래 직원들에게 면 세우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무작정 이들을 욕하기 전에 생각해볼 일이 있다. 만약 모든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갖다 바치는데 홀로 꼿꼿이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버텼다면? 기업들은 물론, 국민들도 이미 경험칙을 통해 알고 있다. 그 기업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모든 사업들이 가시밭길이 됐을 것이다.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고 아마 국세청에서 여러 가지 명목으로 세무조사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재계가 돈을 갖다 바친 것이 특정 대가를 바랐기 때문인지 협박이 무서워서 인지를 떠나 확실한 건 기업들은 돈을 갖다 내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은 대한민국 재벌의 역사 자체다. 박정희 정부 시절 급속도로 산업을 키우기 위해 순환출자 등 여러 가지 지원책을 받았던 것이 정경유착의 시초였고 수 십 년 동안 그 관계가 이어져왔다. 그런데 이제 재계는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정부와의 이 같은 유착이 과연 득인지 실인지.
이번 최순실 사태는 이제 그 고민을 끝낼 때가 됐다고 메시지를 던진다. 결국엔 드러나고 처벌을 받는 전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 정권이 노골적으로 정경유착의 추한 면을 드러내버린 바람에 다음 정권은 사회적 분위기 상 그 어떤 정권보다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재계는 최순실 사태이후 들어설 다음 정권을 유착을 끊어낼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 주고받다 걸리는 것보다 차라리 안 주고 덜 받는 게 합리적인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