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경력 짧을수록 불만 높아…팀워크 중요한 업무 분야일수록 '불안'

지난 9월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시중은행 직원이 '9.23 총파업, 과당경쟁분쇄'라는 문구가 적힌 리본을 가슴에 달고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뉴스1

"3년 동안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야근은 기본이었다. 주말 중 하루 출근도 부지기수였다. 연봉만 높고 일은 안 하는 조직처럼 알려져 있는 데 잘못된 이미지다. 업무량과 실적에 시달려 떠나는 은행원도 많다. 성과연봉제를 시행한다는 데 하려면 제대로 했으면 한다. 은행은 팀워크가 강한 조직이다. 개인 평가가 쉽지 않다. 개인 평가에 중점을 둔 성과연봉제가 우려된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해 묻자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과연봉제 필요성은 공감했다. 다만 부작용을 우려했다. 입행 연도가 짧은 은행원일수록 성과연봉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의견도 말했다. 은행 내부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등 변화에 대한 우려가 기대보다 크다.

지난 12일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참여한 시중은행은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SC제일·씨티·수협은행 등이다. 성과연봉제 도입 시기 세부 내용은 내년 3월까지 각 은행이 내부 논의를 거쳐 정하기로 했다. 이후 은행원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거쳐 2018년 1월 1일부터 성과연봉제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은행 관계자들은 "언젠가 될 일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일괄적으로 도입한 것을 두고 "노조 반대를 예상했을 텐데 급하게 한 것을 보니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은 것 같다"며 "일부 문제가 있다고 나온 정책이다.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이유가 있었나"라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잘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일 의자에 앉아 일 안 하는 상사를 보면 내부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으면 마음"이라며 "일반 직원은 야근이 기본이다. 주말에 하루는 나와 일 처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은행 한 관계자도 "성과연봉제가 꼭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며 "은행 조직 문화에서 연공서열은 문제가 많았다. 은행 경영에선 악영향이다. 성과연봉제는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 어항에 집어넣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다수 은행원은 불만과 우려를 드러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상품이 하나 나올 때마다 '왜 저런 걸 만들어서 힘들게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친구와 가족 등 지인에게 소개하는 것도 힘든데 실적이 낮으면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공식적으로 개인 평가를 내리고 저평가자를 가려내겠다고 하니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성과연봉제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며 "은행 업무는 팀워크가 생명이다. 창구 직원 중 한 명이 고객 상담을 잘한다면 나머지 직원이 그 직원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나머지 업무를 맡아 해준다. 결코 개인의 성과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은행 창구에서 업무하는 한 직원은 "ATM 관리, 고객 친절도 등 실적으로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며 "앞으로는 실적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만 일하려 든다면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홍보팀에서 일하는 한 행원은 "기자들을 상대하고 기업을 홍보하는 역할을 평가한다는 게 절대 쉽지 않다"며 "개인에 대한 평가를 강조할수록 윗선의 눈치를 보며 일하게 된다. 합리적 성과 평가가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은행 준법감시팀 간부는 "불완전판매 등을 감독하는 팀은 은행 실적과 무관하기 때문에 일이 없으면 팀 존재에 대한 비판을 받는다. 반대로 일이 터지면 못했다는 비판을 또 듣는다"며 "이런 팀을 성과연봉제 기준으로 평가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없인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은행 이사회가 통과시킨 성과연봉제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 아무래도 개인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며 "법원에 이사회 의결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이달 말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본안소송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은행지부와 산업은행지부 등 국책은행은 지난 10월 본안소송과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 냈다. 본안 소송은 내년 1월 1일부터 도입하기로 한 성과연봉제가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송이다. 시중은행도 성과연봉제 이사회 통과로 노조와의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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