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 사태 연루, 거취에 치명타 될 수도…내년 출시 소형차 2종도 전망 불투명
“평소에는 사람 참 유한데 일할 땐 송곳 같다. 공격적이고 치밀한 경영자다.”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사장과 일했던 한 간부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승강기에서 마주치면 웃으며 등을 두드려주는 최고경영자(CEO), 같이 있을 때 진땀 흘리지 않아도 되는 상사, 그러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유능한 수장이라는 게 박 사장 지인들의 공통된 평이다.
박 사장의 부드럽지만 날선 카리스마는 올 한해 빛을 발했다. 4월 르노삼성 사장으로 부임 후, 유수 자동차회사를 거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영업과 신차마케팅을 공격적으로 가져간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 덕에 르노삼성의 판매량은 연일 고공행진 할 수 있었다.
다만 박 사장은 내년에는 가시밭길이 예고되고 있다. 르노삼성이 올 한해 SM6와 QM6라는 ‘핵심 선수’를 연달아 등판시킨 탓에, 당장 내년 출시될 신차들의 무게감이 떨어졌다. 여기에 그가 앞서 사장을 지냈던 폴크스바겐 배출가스·연비조작 사건이 발목을 잡고 있어 이런 ‘오너 리스크’를 어떻게 헤쳐 나갈 지가 내년 르노삼성 사운을 가를 전망이다.
◇ ‘식스’ 없는 정유년, 우려되는 판매 부침
‘식스’(6·six)는 르노삼성에겐 행운의 숫자다. SM3·5·7이 동반 침체 늪에 빠져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중형세단 SM6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가 판매 기폭제 역할을 해냈다.
지난달 르노삼성은 내수에서 전년 동기보다 두 배 넘게(109.2%) 급증한 1만2565대를 판매했다. SM6는 5300대, QM6가 3859대 판매되며 흥행을 이끌었다. 지난달 두 차종 합산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 대비 72.89%에 육박한다.
올해 중형체급에서 재미를 본 르노삼성은 내년 소형차 시장으로 무대를 넓힌다. 르노삼성은 소형차 해치백 클리오와 소형 전기차 트위지를 내년 르노삼성의 주인공으로 점찍은 상태다. 두 차종 모두 상반기 출시예정으로, 올 한해 한껏 달아오른 ‘르노 열풍’을 신차 2종으로 잇겠다는 셈법이다.
업계에서는 SM6와 QM6 신차효과가 내년 상반기에는 종료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SM6의 경우 현대차 신형 쏘나타 출시가 예고돼 있어 그 기간 판매량이 급락할 수 있다. 판매 볼륨이 큰 중형세단 판매 감소분을 해치백과 전기차가 메우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상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여가를 중시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실용성이 좋은 해치백이 각광받는 차종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며 “중형차와 소형차는 회사에 미치는 파급력부터가 다르다. 영업이익 측면에서 저가 차량을 박리다매 하는 것보다 중형차를 파는 게 더 낫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발목 잡는 폴크스바겐, 벼르는 검찰에 ‘노심초사’
박 사장은 폴크스바겐이 한국 지사를 설립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초대 사장을 지냈다. 폴크스바겐 독일 본사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로5 차량의 배출가스 관련 소프트웨어(EGR)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박 전 사장이 폴크스바겐 독일 본사에서 '유로5' 차량의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숨긴 채 국내 판매를 강행했다고 보고 있다.
박 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독일 본사와 한국 지사 간 오간 이메일 분석 등을 통해 2011년 중반에 박 사장이 조작 사실을 알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박 사장은 또 부품과 소프트웨어 변경 인증을 받지 않은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고 연비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지난 7월 2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최기식)는 박 사장에 대해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사문서변조, 변조사문서 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8월 2일 서울중앙지법은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악재는 계속됐다. 지난 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폴크스바겐이 연비와 친환경에 대해 부당표시 및 광고한 혐의로 폴크스바겐에 과징금 373억2600만원을 부과했다. 시정명령과 함께 전·현직 고위 임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는데 박 사장도 포함됐다.
폴크스바겐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박동훈 사장이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이 밝혀진다면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박 사장의 내년 행보는 차량 판매와 별개로 검찰 수사발표에 얽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업계에서는 박 사장의 유한 리더십에 윤리적 흠집이 갈 경우, 르노삼성 수장으로서의 입지도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전망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르노삼성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올해 재미를 봤다. 내년 이후에도 외산차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문제는 단순히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다. 향후 진행 방향은 가늠하기 어려우나 리콜이 이뤄지면 하락하는 연비문제로 단체나 개인 소송이 추가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