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 안철수 CJ‧롯데 정면 겨냥…“최소한 영화관은 매각이나 계열분리 해야”
영화산업이 야권발 공정성장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스크린독과점과 수직계열화를 문제 삼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어서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이슈의 한복판에 스스로 섰다. 청문회 정국으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CJ, 롯데 등 대기업을 겨냥한 칼날이 날카로워지는 모습이다.
불을 지핀 인물은 안철수 전 대표다. 안 전 대표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영화산업 불공정생태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동물원 구조 탓에 한국경제가 발전하지 않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 영화산업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입문 직전부터 그가 구사해왔던 이른바 ‘한국경제 동물원’ 논리를 영화산업에 적용시킨 셈이다.
앞서 안 전 대표는 지난 10월 31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의 핵심골자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배급 겸업 규제다. 같은 날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안 의원의 입법과 거의 유사한 내용의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 전 대표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도 의원은 참여연대와 법안을 함께 준비했다. 야당과 현장 제작자들, 시민단체가 대기업 계열사를 겨냥한 공동전선에 선 모양새다.
영화제작자들과 함께 법안을 준비한 덕인지 이날 안 전 대표는 영화산업에 대한 비교적 높은 이해도를 보여줬다. 안 전 대표 주장의 핵심은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에 모두 관여하는 대기업 계열사 탓에 막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제작경쟁력이 약해진다는 데 있다.
그는 이날 “대기업이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어 폐해가 크다.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선 중소제작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면 대박을 만들고, 큰 규모의 제작사로 성장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전 대표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함께 법안을 준비한 배경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수직계열화를 이룬 대표적인 그룹이 CJ다. CJ는 투자배급사 CJ E&M과 멀티플렉스 CGV를 운영하고 있다. 롯데시네마 역시 배급업을 담당하는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롯데쇼핑 산하에 속해 있다. 멀티플렉스 3위인 메가박스 역시 2014년부터 플러스엠이라는 투자배급사를 만들어 영화를 내놓고 있다.
투자배급업계 메이저업체인 NEW도 CGV신도림 위탁점 10개관이 운영 중인 서울 구로구 신도림 테크노마트 판매동 11~14층 토지와 건물에 대한 자산을 양수하며 극장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중 안 전 대표가 직접 겨냥한 업체는 CJ와 롯데다.
안 전 대표는 “다섯 단계를 대기업에서 하다 보니 중소제작사 영화는 심야상영이나 새벽상영을 하며 도태되고, 같은 대기업 계열사 작품만 계속 거는 폐단이 끊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미국에서는 이미 194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파라마운트 등 대기업들이 제작과 상영을 겸업할 수 없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덧붙였다.
제작사 힘이 빠졌다는 증언은 많다. 앞서 기자와 통화했던 한 전직 영화제작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제작사 힘이 컸다. 명품을 만드는 제작사를 선점하려는 투자배급사 간 경쟁도 있었다. 그 후 대기업들이 자체 제작부를 두고 프로듀싱까지 관할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영화제작 과정에서 프로듀서는 작품을 기획하고 현장을 총괄하는 종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보통 이 역할을 제작사 측에서 맡는다. 하지만 프로듀싱 영향력이 작아지자 자연스레 제작사 역할도 작아지게 됐다는 얘기다.
이어 이 전직 제작자는 “CJ 같은 대기업이 공동제작을 하자고 나서면서 수익배분율도 바뀌었다. 그전에는 제작사가 40% 정도 가져갔다면 공동제작이 되니 그 비율이 줄어든 거다. 급격하게 제작사가 왜소화됐다. 제작사가 중심축에서 꺾였다. 영화의 질이 시스템이 아니라 감독 개인 역량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사실상 제작사 크레딧이 없어졌다. 그 틈새에서 감독이 차린 제작사가 상종가”라고 밝혔다.
감독이 만든 대표적인 제작사가 JK필름이다. JK필름은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연이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이끄는 제작사다. 그런데 CJ E&M은 지난달 JK필름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형태로 전격 인수했다. 이렇게 되면 제작 크레딧에 CJ와 JK필름이 함께 올라가도 연결기준 매출은 결국 CJ E&M으로 집계된다. 한편에서는 시너지가 나리라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공룡이 더 큰 공룡이 됐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공청회서 제작문제를 겨냥했던 안 전 대표는 같은 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CJ와 롯데를 직접 거명하며 “최소한 영화관은 매각이나 계열분리를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기업을 겨냥한 움직임이 여기서만 그치는 건 아니다.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청년유니온은 민사소송을 통해 CGV를 정면겨냥하고 있다. 영화티켓에 표시된 영화상영시간에 10분 안팎으로 무단 광고를 삽입하는 게 표시, 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2호(부당한 표시ㆍ광고 행위의 금지)를 어겼다는 취지다.
일단 16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민사부는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청년유니온이 23명의 영화관객과 함께 CGV가 티켓에 표시된 영화 상영 시간에 광고를 상영한 행위에 대해 제기한 부당이득반환 및 위자료청구 소송(1인당 5200원 청구)을 기각했다. 7월8일 1심 재판부(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22단독) 역시 기각했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복안을 밝혔다. 참여연대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에도 ‘영화 상영 시간 내 광고 금지’가 명시돼있다. 안철수 전 대표의 개정안과 시너지를 내면 앞으로 이 이슈도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참여연대 측은 “CGV라는 대기업이 시장지배적지위를 남용해 부당한 이득을 얻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국회 차원에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