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2007년 초호황기 수준 유지…설비 감축 없이 적자 줄이기 어려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사진=뉴스1

국내 조선업계의 설비과잉이 심각하다. 만들 배는 대폭 줄었지만 과거 호황기 선박 수요에 맞춰져 있​는 조선업 생산 설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설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감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선박 건조 능력은 1500만CGT(표준화물톤수)다. 지난해 건조량은 1090만CGT를 기록했다. 400만CGT 정도의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설비가 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건조량은 920만CGT까지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전세계 조선·해운 시장이 침체된 탓에 원활한 기업 운영과 조선·해운 시장의 빠른 회복을 위해선 설비 감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한다. 설비 감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선 업체 적자가 더욱 심화될거란 이유에서다.   


국내 조선·해운산업은 지난 2007년 초호황기를 맞았다. 조선업계는 당시 높은 선박수요에 맞춰 다수 설비를 가동했다. 하지만 2008년 터진 글로벌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시장 침체가 시작됐다. 수주 감소와 선주사 발주 취소 등 악재가 겹쳤다. 하지만 불황 이후에도 조선사 생산설비는 2007년 초호황기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올해 발간한 조선자료집에 따르면 2009년 중·대형 조선 9개사 기준 기본 생산 설비(도크 및 선대)는 총 54기였다. 이는 2013년 53기로 줄었다가 2014년 조선사가 10개로 늘면서 설비도 58기가 됐다. 중·대형 조선사가 불황임에도 설비감축을 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업 설비 과잉은 국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세계 선박 건조 능력은 4990만CGT였다. 실제 건조량은 3780만CGT로 1200만CGT 가량이 과잉 상태다. 


이처럼 전세계가 설비 과잉 문제에 맞닥뜨렸지만 국가별 감축 실적은 판이하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함께 전세계 선박의 85~90%를 건조한다. 2011~2015년 우리나라 설비 감축률은 중국과 일본의 71~78%밖에 되지 않는다. 두 국가는 줄어든 선박 수요에 따라 설비 가동을 중지하거나 매각하는 감축 절차를 꾸준히 밟아왔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체는 설비 감축 노력을 게을리했다.


국내 조선업계가 설비감축에 소극적인 이유는 업황이 곧 회복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산업은행 구조조정 자문단은 국내 조선업계가 수주가뭄에서 벗어날 시점을 2018년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곧 좋아질 업황을 의식해 공급능력 감축을 꺼리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급격한 설비 매각보다는 설비 가동 일시 중단과 같은 타협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감축 대상에 설비 뿐 아니라 인력도 포함되어 이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줄어든 건조 물량에 따른 해직과 고용 감축이 불가피한 탓이다.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 관계자는 “설비 감축만큼 인력 감축 문제도 중요하다. 설비는 일시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다가 업황이 좋아지면 재가동하면 된다. 하지만 조선업과 같은 전문 인력은 재양성이 힘들다”며 “최대한의 인력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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