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출시 전해진 8월 이후부터 쏘나타 판매량 월 5000대 수준으로 급감

현대차 준대형 세단 신형 그랜저가 중형 세단 쏘나타 판매량을 빼앗아 오고 있다. ‘더 젊은 그랜저’라는 이미지 수혈로 인해 현대차그룹 내 동일 차급에 한정됐던 판매 간섭이 차급을 뛰어넘어 쏘나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탓이다. 당초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와 쏘나타 사이 간극을 메웠던 그랜저의 위치도 흔들리고 있다.

6세대 그랜저 출시 전까지 그랜저 위치는 확고했다. 4세대 그랜저는 성공한 사람이 타고 싶은 고급차라는 이미지로 2011년 5세대 출시 전까지 40만6798대를 판매했다. 5세대 그랜저도 고급 승용차 이미지를 계승했다. 다만 6세대 들어 현대차는 디자인을 젊게 바꾸고 주행성능을 강조하고 나섰다. 기존의 그랜저 수요층보다 더 젊은 30, 40대 소비자를 붙잡겠다는 취지다. 

 

현대차 신형 그랜저가 30, 40대 구매층 확보를 위해 디자인과 주행성능 등을 강조하면서 하위 차급은 쏘나타와 판매간섭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 사진 = 시사저널e

 

국내 자동차 시장 주력 구매층으로 부상한 30, 40대로 인해 출시 초기 그랜저는 큰 관심을 끌었다. 현대차에 따르면 신형 그랜저는 사전계약 첫날 1만5973대가 계약된 데 이어 지난달 판매 1주일 만에 4606대가 팔렸다. 이에 따라 그랜저는 구형 모델을 포함해 지난달 총 7984대가 팔리며 승용 부문 판매량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중형 세단 쏘나타는 준대형 세단 그랜저에 구매층을 내어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쏘나타 판매량은 그랜저 판매량의 73% 수준인 5907대에 그쳤다. 현대차가 판매 부진 극복을 위해 신형 그랜저를 조기 출시한다는 소식이 퍼진 지난 8월 이후 5000대 수준으로 급감한 쏘나타 판매량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랜저가 젊은층을 새로운 구매층으로 설정하면서 쏘나타 수요를 끌어왔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실제로 서울에 사는 직장인 한모(35) 씨는 최근 쏘나타 구매를 고려하다 신형 그랜저로 마음을 돌렸다. 한 씨는 “가족을 위한 중형 세단으로 처음엔 쏘나타를 살까 고민했지만 제네시스를 닮은 역동적인 디자인의 그랜저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면서 “차급은 다르지만 그랜저 2.4ℓ 가솔린 모델 가격이 쏘나타와 차이도 크게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를 출시하면서 디자인 등 그랜저의 성격 변화와 함께 2.4ℓ 가솔린 트림을 확대했다. 그랜저 주력 트림으로 역할 해 온 3.0ℓ 가솔린 모델을 고급 트림으로 전환해 플래그십 모델이 된 아슬란과 하위 모델 쏘나타 사이에서 그랜저를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늘어난 그랜저 2.4ℓ 가솔린 모델 트림은 중형 세단 쏘나타와의 틈을 사라지게 하는 역효과를 냈다.

신형 그랜저 2.4ℓ 가솔린 모델 엔트리 트림 판매 가격은 3055만원으로 쏘나타 2.0ℓ CVVL 프리미엄 스페셜과 판매 가격 차이는 154만원에 불과하다. 하위 모델인 쏘나타와 신형 그랜저 간 판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셈이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 최하위 트림인 모던에 9개 에어백과 8인치 스크린, 천연가죽 시트 등을 기본 장착하는 등 상품성을 높였다”면서 “쏘나타 상위 트림과의 차별성을 스스로 제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올해 들어 르노삼성 SM6와 한국GM 말리부의 신차 효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지켜온 쏘나타의 중형 세단 시장 1위 자리가 이달 신형 그랜저로 인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가 내년 쏘나타 부분변경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어 판매 간섭현상은 더욱 심화할 조짐이다. 현대차는 이미 디자인과 주행 기능 측면에서 완전변경에 가까운 쏘나타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신규 구매층의 60%가 30, 40대일 정도로 6세대에 접어든 그랜저의 변화가 뚜렷하다고 해서 하위 차급인 쏘나타 구매층이 20, 30대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차급을 뛰어넘는 영역 침범을 내년 현대차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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