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2M, 현대상선 가입 거부”…정부 해운업 강화안 추진력 상실 위기
시장 우려대로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이 현대상선을 세계최대 해운동맹인 ‘2M’ 회원사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대상선의 2M 가입은 회생의 선택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여겨져 왔다.
현대상선은 “아직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며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 다만 2M 핵심사인 머스크라인 측이 연일 부정적 입장을 전하면서,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가입에 실패해 중소선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법정관리에 처한 한진해운에 이어 현대상선까지 사세가 줄어든다면, 한국 해운업의 몰락이 현실화될 수 있다.
◇ 연일 제기되는 현대상선 ‘2M 가입 무산설’
8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라인의 대변인 미카엘 스토르가르드의 말을 빌려 "현대상선이 2M의 파트너로 합류하는 가능성을 논의했으나 이제 다른 협력 가능성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2M이 동맹 영업망을 현대상선과 공유하는 안을 백지화 시켰다는 것이다.
2M은 세계 1, 2위 해운사인 머스크라인과 MSC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해운동맹으로, 현대상선 회생의 열쇠말로 꼽혀왔다. 산업은행도 현대상선 구조조정 계획을 승인하는 전제조건으로 2M 가입을 꼽은 바 있다. 해운업 특성상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면 국제 영업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선박과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해운동맹 가입에 성공했다면, 최악의 불황에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WSJ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에도 2M이 고객인 화주들 반발 탓에 현대상선을 회원사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WSJ와의 인터뷰에서 씨인텔리전트컨설팅의 라르스 옌센 최고경영자는 "현대가 글로벌 해운사로 미래를 보려면 얼라이언스 가운데 한 곳과 강력한 선박공유협약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느슨한 협력은 시장 상황에 따라 무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측은 이 같은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며 "이달 내 (2M 가입) 본계약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계약이 체결되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가입 실패 정황을 담은 보도가 한달 새 연이어 흘러나오자 현대상선도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 정부의 ‘해운업 강화안’, 현대상선 무너지면 답 없어
현대상선이 2M 가입에 애를 먹는 이유는 한진해운 탓이다. 2M이 현대상선과 지난 7월 해운동맹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던 이유는 아시아~미주 노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시아~미주 노선 영업력이 우수했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탓에 이탈했다. 즉, 2M 입장에서는 굳이 경영난에 처한 현대상선을 포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청산 수순을 밟게 된 게 화주들에게는 큰 위협요소가 됐다. 한국 정부가 금융논리를 대입해 한진해운에 사망선고를 내린 뒤, 국제 해운사들 사이에는 현대상선 역시 언제든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싹트고 있다. 2M 경영진이 현대상선을 무리하게 회원사로 가입시킬 시, 기존 회원사와의 신뢰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한진해운과 비슷한 위기에 처했던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와 3위 해운사 ‘CMA CGM’은 자국 정부와 채권은행으로부터 긴급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덴마크 정부는 머스크에 자국 수출입은행을 통해 5억2000만 달러(약 5755억원)를 지원하고, 정책금융기관이 대출 62억 달러(약 7조원)를 지원했다. 프랑스 CMA CGM은 채권은행과 민간 은행 등에서 9억3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양종서 연구원은 “해외 정부가 해운업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유동성을 지원한 것은 해운업의 파급력 등을 고려한 조처였다”며 경영이 어려워진 해운사를 원칙대로 처리하는 모습이 해외 화주들에겐 하나의 리스크(risk)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칙을 지킨 법정관리가 역으로 국내 해운사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선박회사 설립과 함께 선박 신조 프로그램과 선박금융펀드를 지원하고, 현대상선이 우량 자산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대상선을 키워 세계 5위권의 국적 선사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그러나 현대상선이 2M 가입에 실패하게 된다면 정부의 해운업 지원 정책에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국내 해운업 마지막 보루였던 현대상선까지 국제 영업망을 활용하지 못할 시 신뢰를 잃은 화주들의 이탈도 줄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한국 해운업이 ‘침몰’ 위기에 놓이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종서 연구원은 “정부가 원칙대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고 갔지만, 이 같은 인식이 한국 해운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됐다”며 “급한 화물을 맡기려는 화주들은 한국 해운사를 꺼리게 될 것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현대상선을 포함한 국내 해운산업 전체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