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 IP 활용 신작들 '기대 이하' 평가…주가도 큰 폭 하락
‘리니지’ 지적재산권(IP)을 이용해 만든 신작 게임들이 최근 잇단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의 대표작으로 국내 역할수행게임(RPG)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일각에서는 리니지 신화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리니지는 엔씨가 지난 1998년 국내에 출시한 MMORPG다. 출시 후 리니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대표 RPG로 회자되고 있다. 리니지는 엔씨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일뿐만 아니라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리니지는 매출액 3130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최근 3분기 실적발표에서도, 매출 838억원을 기록, 전체 매출의 38.5%를 차지했다.
엔씨는 이러한 리니지 인기를 이어 가고자, 리니지 IP를 활용한 PC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PC 온라인게임 ‘리니지 이터널’과 모바일게임 ‘리니지 레드나이츠’다. 여기에 엔씨는 모바일게임 ‘리니지M’과 리니지2 IP를 활용한 ‘리니지2 레전드(가제)’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넷마블도 오는 14일 리니지2 IP를 활용해 만든 모바일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을 정식 출시한다.
리니지 IP를 이용한 게임들은 출시전부터 유저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와 증권사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일부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워낙 유명한 IP라 대부분이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돼가고 있다. 최근 실시한 비공개베타테스트(CBT)에서 유저들의 혹평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리니지 레드나이츠는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최종 CBT 테스트를 진행했다. 정식 출시는 오는 8일이다. 리니지 IP를 활용한 첫 모바일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유저들의 기대가 남다른 게임이었다. 특히 기존 리니지 캐릭터를 귀여운 SD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존 모바일게임과 큰 차이점이 없다는 혹평도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CBT를 진행한 일부 유저들은 “기존 게임과의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 리니지 IP만 사용했을뿐 기존 RPG와 판박이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이러한 의견은 지난 10월 엔씨가 개최한 리니지 레드나이츠 쇼케이스 현장에서도 나왔다. 당시 엔씨는 단일 게임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쇼케이스를 개최했다. 유명 연예인과 캐스터를 섭외해, 현장에서 실시간 전투도 공개했다. 그러나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대다수의 기자들은 엔씨만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엔씨 관계자는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 보면 엔씨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엔씨의 기대와 다르게, 지난 CBT에서 대다수 유저들은 엔씨만의 특색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각종 게임커뮤니티에는 레드나이츠에 대한 혹평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1년 지스타에서 첫 선을 보인 후 5년만에 등장한 ‘리니지 이터널’도 유저들의 혹평을 피해가지 못했다. 리니지 이터널은 기존 리니지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리니지로부터 약 70년 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동안 리니지의 정식 후속작으로 큰 기대를 받아 왔다.
엔씨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4일까지 닷새간 CBT를 진행했다. 유저들의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일부 게임 플레이에 만족하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유저들은 기존 RPG와 차별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PC 게임보다는 모바일게임 같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여러 의견을 취합해본 결과,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다’가 주를 이뤘다.
이러한 유저들의 의견을 반영하듯, 엔씨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기록했다. 지난 1일 엔씨 주가는 전일대비 9.93%나 하락했다. 종가 기준 하루 낙폭으로는 지난 2012년 11월 8일 이후 4년여만에 최대다. 지난 2일과 5일에도 주가가 연속으로 하락하며, 최근 3거래일 동안 주가가 13.02%나 급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다수 국내 증권사들은 리니지 이터널 CBT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과도하다며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출시까지 최소한 1년이 남은 신규 게임의 테스트 결과에 이 정도로 주가가 빠질 이유는 없다”며 “통상적으로 2~3차례의 CBT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리니지이터널은 이제 첫번째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엔씨의 리니지 신화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엔씨는 그동안 PC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독보적인 RPG 명가로 자리매김 해 왔다. 그 중심에는 항상 리니지가 있었다. 그러나 리니지라는 독보적 타이틀에 안도했던 탓일가. 모바일게임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모바일게임 회사로의 변신에 성공한 넷마블게임즈에게 매출 2위 자리까지 내주게 된다.
이에 엔씨가 모바일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리니지 IP다. 리니지 IP를 활용한 모바일게임을 출시해, 단번에 유저들의 이목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다. 문제는 엔씨만의 조직문화다. 업계에 따르면, 엔씨는 경영기획보다는 개발팀의 힘이 강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개발자 출신인 김택진 엔씨 대표이사는 그동안 개발자 우대 정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엔씨는 게임 개발 능력을 쌓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을 소개할 때 엔씨 출신임을 강조하는 개발자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자 우대 정책은 엔씨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개발자들의 자율권을 보장해 주다 보니, 게임 개발에 있어 타 경쟁사보다 개발이 느리게 진행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이번 리니지 이터널도 게임 출시가 계속 지연되다 보니, 일각에서는 게임이 엎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느린 개발속도는 모바일게임에 있어 치명적이다. 리니지 레드나이츠와 리니지 이터널이 혹평을 받은 이유도 개발 기간과 무관하지 않다. 만약 두 게임이 몇 년 전에 출시됐다면 이렇게까지 혹평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유저들은 앞서 출시된 고화질·고품질 게임들에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상태다. 지금의 레드나이츠와 이터널은 유저들에게 있어, 리니지 IP만을 사용했을뿐, 더이상 특별한 점이 없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엔씨의 리니지 의존도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특히 모바일게임 출시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아직 모바일 생태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PC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며 “게임 출시에 앞서, 모바일시장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