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승승장구, 중견·중소 실적 악화
국내 게임업계도 다른 업종처럼 양극화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대형 업체와 중견·중소 게임업체 간 실적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시장 적응에 실패한 1세대 중견 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허리가 사라졌다’란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게임업계 양극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상황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매출액 기준으로 ‘빅3’인 넥슨, 넷마블게임즈, 엔씨소프트 등이 이끌고 있다. 빅3는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상위 게임업체 20개 매출 총합의 60%가량을 차지했다. 올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주요 게임사들의 매출 성적을 보면 매출 상위권에 있는 넥슨과 넷마블, 엔씨 등 빅3와 컴투스 등 일부 모바일 인기 게임을 배출한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넥슨은 기존 PC 온라인게임의 인기와 더불어 모바일게임 신작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국내 게임업체로는 최초로 올해 누적 매출 2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넷마블은 모두의 마블과 세븐나이츠, 스톤에이지 등이 큰 인기를 끌며 3분기 만에 1조원을 달성, 올해 최대 실적을 낼 전망이다. 엔씨 역시 리니지와 블레이드앤소울 등의 인기에 힘입어 매출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엔씨가 올해 누적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는 빅3와 달리 중견·중소 게임사들의 성적은 처참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시장 적응에 실패한 1세대 게임사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창세기전’ 시리즈로 유명한 소프트맥스는 최근 자사 대표 게임 창세기전의 모든 지식재산권(IP)을 20억원에 넥스트플로어로 양도했다. 소프트맥스는 대표적인 1세대 게임업체로 국내 게임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업체란 평가를 받아 왔다.
소프트맥스는 2000년대 들어서 신작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모바일시장 적응에도 실패했다. 최후의 보루였던 ‘창세기전4’마저 흥행에 참패했다. 창세기전4는 16년 만에 나온 창세기전 최신작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낮은 게임 품질과 서버 문제로 혹평을 받았다. 경영난으로 고전하던 소프트맥스는 결국 지난 8일 ESA제2호투자조합(ESA)에 인수됐다. ESA는 부진한 PC게임 부문을 구조조정하면서 창세기전 판권을 넘겼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중견·중소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와이디 온라인은 3분기 영업손실 23억원을 기록했으며, 매출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한빛소프트는 3분기 영업손실 6억원 가량으로 적자를 지속했으며, 엠게임은 3분기 영업이익 1억1000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94.6% 감소한 성적표를 보여줬다. 1인칭슈팅(FPS)게임으로 유명한 드래곤플라이는 저조한 성적표를 가리기 위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의 실적을 합산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드래곤 플라이의 3분기 실적은 매출 26억원, 영업이익 3억원으로 나타났다.
‘쿠키런'으로 잘 알려진 모바일게임사 데브시스터즈는 6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갔다. 데브시스터즈는 3분기 연결기준 약 31억3300만원의 영업손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인 데브시스터즈는 지난 28일 주요 경영진이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총 1만 주 규모의 자사주를 장내 매수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지훈 김종흔 공동대표는 2017년 연봉을 전액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게임업계에 허리가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중간 위치에서 업계 전체의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업체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빅익빈 부익부 현상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모바일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넷마블을 제외한 넥슨과 엔씨는 탄탄한 자본력과 풍부한 인기 IP를 바탕으로 모바일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부터 모바일시장에 피바람이 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모바일시장은 그동안 중소업체들에겐 기회의땅으로 불려왔다. 최근 넥스트플로어의 ‘데스티니 차일드’ 흥행 돌풍처럼 중소업체들도 게임성만 인정받으면 충분히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 모바일시장이었다. 그러나 내년엔 빅3가 모두 본격적으로 모바일시장에 진출한다. 이미 중소업체들은 걱정에 시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중소 모바일게임업체 관계자는 “대형업체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인기 IP를 바탕으로 모바일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며 “중소업체들이 하나의 게임에 사활을 걸 때, 대형업체들은 중소업체의 메인 타이틀에 해당하는 게임들을 동시에 여럿 쏟아낸다.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 게임 흥행 실패로 인한 신작 투자 부진도 중견·중소업체들을 악순환에 빠뜨리고 있다. 신작 흥행 실패는 곧바로 매출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신작 개발 동력 저하를 낳게 되는 것이다. 개발자 김재형(29·가명)씨는 “하루에도 수십개씩 모바일게임이 시장에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모바일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사실상 로또에 가깝다”고 말했다.
모바일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가 발표한 ‘2016년 상반기 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중 한국에 출시된 게임 6700여종 중 5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한 게임은 64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의 0.96%에 불과한 수치다. 6700여종 중 매출 상위 100위에 한 번이라도 포함된 게임은 92종으로 전체의 1.37%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PC 온라인게임 뿐만아니라 최근에는 모바일게임 마저도 매출 순위가 고착화 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빅3가 본격적으로 모바일시장에 경쟁하는 내년에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견·중소 업체들에겐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