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회장까지 8명 회장중 7명 검찰 조사…실적 개선 불구 연임 전망 어두워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역대 포스코 회장들이 겪어왔던 ‘포스코 잔혹사’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역대 포스코 회장들은 대부분 검찰 수사를 겪으며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조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1일 오후 7시부터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12시간가량 조사했다. 권 회장은 최순실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처음 출석한 대기업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권 회장은 최씨 측근인 차은택 씨의 ‘지분 강탈’ 행태가 드러난 포레카 매각을 최종 승인한 인물로, 검찰은 매각 결정 이면에 차씨에게 이권을 챙겨주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등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매각 결정이나 실무 과정에 차씨나 최씨가 영향력이 있었는지, 청와대 쪽의 외압은 없었는지 등을 따져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는 2014년 3월 지분 100%를 가진 포레카를 매각하기로 하고, 그해 말 중견 광고대행사 A사를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차씨는 측근들을 동원해 A사 한모 대표에게 포레카를 인수한 뒤 지분 80%를 넘기라고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차씨는 물론 그가 대부로 부른다는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모두 여기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매각 과정에서 불법행위나 차씨의 전횡을 묵인·방치한 정황이 드러나면 권 회장의 신분도 피의자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된 이후에도 회장 선임 때마다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심이 끊임 없이 제기돼왔다. 여기에는 정부가 사실상 통제권을 갖는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10%를 가진 최대주주라는 배경도 있다.
권 회장도 당시 박근혜 정부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회장으로 낙점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언론은 조원동(60)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회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3년 말 "차기 회장은 권오준으로 결정됐다"고 포스코 측에 통보하는 등 깊이 관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사상 첫 적자 충격에서 벗어난 포스코의 고공행진에도 불구, 권 회장의 연임은 점점 안개 속에 빠지고 있다. 권 회장은 약 4개월 뒤인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올해 상반기 이후 권 회장의 연임은 업계의 관심사였다. 여기에 지난 3분기 포스코가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1조343억원)을 기록하며 호실적을 보이면서 권 회장의 연임은 탄력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 포레카 사건을 계기로 권 회장의 연임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역대 포스코 회장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수사와 조기 사퇴를 거듭해 왔다. 포스코 회장 가운데 3대 정명식, 6대 이구택 회장을 제외하곤 줄줄이 기소를 면치 못하고 형사처벌을 받았다.
고(故) 박태준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 24년 6개월간 자리를 지키던 회장직을 내려놓게 된다. 포스코를 창립한 박태준 명예회장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1993년 회사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하고 포항제철 계열사와 협력사 20개 업체로부터 39억7300만원을 받은 특가법 위반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포항제철 명예회장직도 이때 박탈당했다.
박 명예회장은 ‘3당 합당’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밑에서 최고위원직을 맡았으나,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요구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 명예회장은 1994년 11월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조성한 비자금이 발견되지 않자 검찰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박 전 회장의 핵심 참모 출신인 황경로 2대 회장(1992년 10월∼1993년 3월)이 취임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황 전 회장은 포스코 역대 회장 가운데 가장 단명한 인사로 꼽힌다. 황 전 회장은 거래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9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명식 3대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년간 회장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의 측근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찌감치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김만제 회장(1994년 3월∼1998년 3월)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사임했다. 그는 1994년부터 4년여에 걸쳐 회사기밀비 4억2415만원을 유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1999년 2월 불구속 기소됐다.
5대 유상부 회장(1998년 3월∼2003년 3월)은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6대 이구택 회장(2003년 3월∼2009년 1월)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검찰이 정기세무조사 무마 청탁설 조사에 나서자 돌연 사퇴했다.
권 회장의 전임인 정준양 7대 회장(2009년 1월∼2014년 3월)은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끝에 지난해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 27일 부실기업 인수로 회사에 16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준양 전 회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심리로 열린 정 전 회장의 결심 공판에서 “성진지오텍같이 포스코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업체를 무리하게 인수해 포스코에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끼치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정 전 회장에 대한 선고는 내년 1월 13일 이뤄진다.
포스코는 2000년 9월 정부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민영화됐지만 사실상 공기업이라는 꼬리표가 계속해서 따라 왔다. 정권이 바뀌면 회장이 사임하고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성 인사가 이뤄졌다는 이유다.
이에 포스코는 2004년 이사 선임에 있어서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집중 투표제를 도입했다. 2006년에는 사외이사들로 꾸려진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가 회장 후보를 결정하고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최종 선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포스코는 주요 인사 선임과 관련해 정권의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 권 회장의 청와대 개입 의혹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외풍에 시달리는 이유는 ‘주인없는 회사’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며 “포스코 스스로 주요 인사 선임과정에 외부 세력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특히 정권과의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