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민간기업…민영화 후에도 정부가 인사 좌지우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권에 취약한 포스코·KT의 민낯이 드러났다. 민영화한 지 십수년 지났지만 여전히 정권이 인사에 개입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번 게이트에서도 두 기업은 비선실세에 놀아났다.
포스코는 박근혜정부 들어 대대적인 몸집 줄이기에 들어섰다. 정준양 전 회장 재직 기간 동안 계열사 수가 두 배 이상(32개→67개) 늘어난 데 따른 것이었다. 매각 대상에는 광고회사인 포레카(현 컴투게더피알케이)도 포함돼 있었다. 최순실씨와 차은택씨 등은 바로 이 회사를 노렸다. 직접 인수가 여의치 않자 일단 중소업체가 인수하도록 하고 지분을 빼앗는 계획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기 관여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 "포레카가 대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김영수 포레카 대표를 통해 매각절차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당시는 이미 포레카 우선협상 대상자로 롯데 계열 엠허브와 중소 광고업체 컴투게더가 선정된 상태였다. 엠허브가 입찰을 포기하며 포레카는 컴투게더가 인수하게 됐다.
인수가 확정되자 본격적인 협박이 시작됐다. 여기엔 포레카 대표였던 김영수씨도 가담했다. 김씨는 2014년 3월 포레카 대표에 취임했다. 취임 후 그는 직원들에게 공공연하게 "나는 회사를 매각하러 온 사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씨 측근인 김씨가 대표로 취임하는 데에 최씨 등이 개입이 있었는지 수사할 계획이다.
컴투게더 대표 한씨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같은 해 8월 대금을 단독으로 완납하고 인수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포레카는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통상적으로 광고 계열사를 매각하는 경우에도 그룹 광고 물량을 수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줄이는 것에 비해 포스코는 계약에 명시된 기간이 끝나자 곧바로 발주를 끊었다. 포스코도 한씨에 대한 보복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제기되는 배경이다.
포스코는 민영화 이전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정치적 행보로 자주 얽히며 정치권발 풍파에 시달렸다. 지난 2000년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했지만 정부가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며 '무늬만 민영화'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민영화 이후에도 정권들은 포스코 회장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포스코 회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얼마 못가 사퇴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정권이 사실상 회장 인사권을 행사하니 정권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전임 정준양 전 회장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이명박정부 핵심 실세들의 놀이터였다. 정 전 회장은 이상득 전 의원 등 MB정부 핵심 실세들의 지원에 힘입어 포스코 회장직에 올랐다. 이 전 의원은 기획법인을 통한 일감 나눠먹기로 26억원을 받은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KT도 이번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연임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되던 황창규 회장이 최순실발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인 점이 드러나 안팎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둔 상황에서 연임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나오고 있다.
황 회장은 안 전 수석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동수씨와 신혜성씨를 지난해 2월과 10월경 각각 브랜드지원센터장(전무급)과 IMC본부 그룹브랜드지원 담당(상무보급)으로 채용했다. 이씨는 차은택씨 지인이고, 신씨는 포레카 전 대표 김영수씨의 부인이다. 이에 앞서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이 같은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박 대통령은 이어 지난해 10월과 올 2월 안 전 수석에게 두 사람 업무를 '광고 업무'로 변경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안 전 수석의 연락을 받은 황 회장은 두 사람을 각각 IMC본부장과 IMC본부 상무보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후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을 통해 최씨가 실소유자인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이하 플레이그라운드)의 광고대행사 선정을 요구하자 KT는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총 68억원 상당의 광고물량을 수주할 수 있게 했다.
황 회장이 이번 사태로 거센 비판을 받는 데에는, 그의 취임일성이 '낙하산 인사 근절'이었기때문이다. 최씨 등이 KT 광고담당자로 자신들의 측근을 임명해 매출을 올리는데 방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KT새노조는 "기업 내부로 범죄자의 끄나풀을 끌어들여 광고를 주무르는 부서의 책임자로 채용했다"며 "강도에 의해 돈을 뜯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강도의 부하를 집에 상주시켜 살림을 맡긴 꼴"이라고 황 회장을 맹비난했다.
이어 "KT는 강요의 피해자임에 틀림없지만 황 회장은 피해자가 아닌 공범"이라며 "KT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황창규 회장이 이들을 기용하여 자신의 연임 뒤 배경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추가로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KT도 지난 2002년 민영화에 성공했다.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대주주가 없고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다. 이 때문에 포스코처럼 회장직을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고 있다. 회장뿐 아니라 주요 간부에 낙하산 인사가 임명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