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노사 갈등 지속은 공멸의 길"
현대중공업 노사가 회사 재정 형편을 놓고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사측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분사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을 추진하자 노조는 “회사가 곳간에 돈을 쌓아 놓고 노동자 희생만 강요한다”며 파업카드를 다시 빼들었다. 전문가들은 노사 갈등이 지속되면, 기업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공멸(共滅)을 경고하고 나섰다.
24일 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전날 열린 58차 2016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 임금 3만9000원 인상을 골자로 하는 제시안을 건넸다. 또 격려금으로 기본급 100%에 150만원을 추가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임금안 보다는 단협부문이 문제였다. 사측은 신규 채용 시 종업원 및 정년퇴직자 자녀를 우대하던 단협 조항을 폐지하고 우수조합원 해외연수 또한 당분간 유보해 달라고 노조에 요구했다. 노조는 임금 인상을 커녕 복지제도 축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 제시안은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 오히려 전보다 더 후퇴한 조항"이라며 "이미 단체교섭을 마친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보다 못한 제시안이다. 경영진은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있다. 대화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사측에 구조조정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경영정상화 차원에서 임원 감축, 고참직원 대상 희망퇴직 실시, 각종 비핵심자산 매각, 비조선 부문 분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분사방침이 노사 갈등 도화선이 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내년 4월 1일 자로 회사를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로봇, 서비스 등 6개 회사로 분리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노조는 분사가 진행되면 노동자 고용조건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노조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분사가 노동자 임금삭감과 고용유연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분사 대상자는 본래 받던 복지혜택과 임금 축소가 불가피한데 사측이 이에 대한 합당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노조원은 퇴사를 강요당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분사를 통해 독립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계열회사로 만들어 인건비와 단체협약이 보장하는 복지를 축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분사 후 2년 정도는 지금 수준의 혜택을 준다 하지만 그 약속은 언제든지 파기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또 회사가 ‘두둑한 금고’를 지니고 있음에도 위기만을 내세워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적자 경영이 계속되고 있는 대우조선과 달리 현대중공업은 흑자 행진을 벌이고 있다며 사내유보금을 풀 때라고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분기 흑자 전환 이후 세 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2014년 하반기부터 펼쳐온 긴축경영이 빛을 발하며 조선, 해양 등 주요사업부문에서 수익을 냈다. 현대중공업 2016년도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8조8391억원, 영업이익은 3218억원이다.
노조 관계자는 “2016년 3분기 기준으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연결기준 4조2000여억원으로 늘고 사내 유보금은 13조1000여억원으로 늘었다”며 “흑자 기업에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회사가 어려워서 라기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3세 경영권 승계를 유리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의 이 같은 주장이 허무맹랑 소리라며 선을 그었다. 노조가 주장하는 자산 대부분은 토지나 설비에 묶인 돈으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찰’은 아니라는 게 사측 입장이다. 또 당장의 흑자는 비용감소에 따른 일시적 ‘착시’로 미래 먹거리가 줄어들 문제를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10월말까지 모두 61억6800만 달러를 수주해 목표달성률 64.9%를 기록했다. 조선 3사 중 달성률이 가장 높지만, 사측이 최근 수주목표를 195억 달러에서 95억 달러로 대폭 낮춘 덕이다.
현대중공업은 분사 방안 역시 재정건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중공업 부채비율은 지난 2014년 220%, 2015년 220%를 유지하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160% 대로 감소했다. 증권업계는 현대중공업이 분사하면 부채비율이 10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 분사 추진을 두고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한다”며 논의 자체를 금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회사가 추진하는 분사의 방향과 목적이 국내 조선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그려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는 “조선사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가 많다보니 사측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하고 분사를 즉각적으로 추진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며 “전체적인 산업을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정부가 10년이나 20년 뒤 조선해양산업 미래를 위하는 로드맵을 회사와 같이 그려내야만 위기 극복 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