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직원 교육된듯 '최순실 게이트' 질문 피해…회사측 "억울하다"면서도 대표 소재는 침묵
22일 오전 9시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 한파 탓에 공기는 차가웠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성냥갑 같은 무채색 생산 공장 사이, 간간히 낙엽 쓸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푸른 점퍼를 입은 직원 둘 셋이 신분검사 뒤 어느 공장으로 들어갔다. 한 눈에 봐도 주변 공장에 비해 규모가 컸다.
공장 차단막 앞을 지키는 경비에게 다가갔다. “여쭤볼게 있다”는 외지인 질문에 경비는 시선을 떨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난 아무것도 모른다”며 사무실로 들어가 얇은 유리창을 ‘쾅’하고 닫았다. 반응이 놀랍지 않았다. 공장을 운영하는 회사는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초등학교 동창 가족이 운영하는 무기화학 제조업체 케이디(KD)코퍼레이션이다.
◇ 군대 같은 공장, 직원 모두 입 맞춘 듯 “모른다”
KD코퍼레이션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10억6000만원 규모 계약을 따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은 2014년보다 43억원이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3억5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57% 급증했다. 검찰은 지난 20일 수사결과 현대차그룹이 청와대 ‘부탁’에 의해 KD코퍼레이션과 수주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KD코퍼레이션 성장이 부정청탁 결과라는 것이다.
이틀 사이 정·재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KD코퍼레이션. 회사가 ‘올 스톱’ 될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22일 시화공단에 위치한 생산 공장 일상은 그대로였다. 직원 5~6명은 지게차를 운전했고 포대를 날랐다. 직원들은 공장 앞마당에서 간간히 웃으며 농담도 건넸다. 다만 외지인과는 철저히 말을 섞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교육된 듯한 모습이었다.
공장 경계는 삼엄했다. 빵과 우유를 싣고 온 화물차마저 공장 내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화물차 운전자가 신분을 밝혔지만 공장 안으로 차를 진입시키지 못했다. 운전자는 결국 공장 초입에 차를 정차시키고, 직접 식료품을 안으로 옮겨야 했다. 마치 군대 위문소를 보는 듯했다. 주변 공장이 정문 개폐기를 모두 열어두고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 모습과는 달랐다.
KD코퍼레이션과 500m 정도 떨어진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담배를 피며 휴식을 취하던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KD코퍼레이션 직원들과 달리 외지인에게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그제야 “그게 여기냐?”며 놀란 토끼눈을 했다. 최순실 사태 이전부터 KD코퍼레이션 직원과 주변 공장 직원들 간 왕래는 없었다고 했다.
KD코퍼레이션과 동종 업계에서 일한다는 박모씨는 “공장 단위로 대기업이 하청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 계약을 맺으려면 생산 라인이나 연구실 테스트 등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며 KD코퍼레이션이 현대차에 납품한 것으로 알려진 원동기용 흡착제의 경우 대기업과 공장 간 일대일 계약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 “억울하다”는 KD코퍼레이션, 대표 소재는 ‘물음표’
오전 11시 50분. 점심시간이 되자 굳게 닫혀있던 KD코퍼레이션 정문이 열렸다. 남자 직원 3명이 걸어 나왔다. 기자를 보자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른다”만 연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직원이 우물쭈물 뭔가를 말하려하자, 상사로 보이는 이가 “뭐하는 거냐. 빨리 안 가고”라며 채근했다. 식사를 하러 나가는 직원 5명에게 모두 같은 반응을 보였다.
결국 점심시간 1시간 가량 경비실을 통해 회사 대표 이모씨 소재를 계속 묻자, 내선번호를 통해 총무실과 연결됐다. KD코퍼레이션 총무팀장은 “대표가 현재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보도된 의혹에 대한 사측입장을 묻자 그는 매우 억울하다는 투로 “오보가 너무 많아 입장을 밝힐 수조차 없다. 팩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KD코퍼레이션 대표 이씨는 최순실씨에게 1000만원이 넘는 명품가방과 현금 5000여만원을 건넸다. 현대차에 납품을 하게 해달라는 청탁이었다. 최씨가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했고, 결국 안종범 전 수석이 현대차에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납품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게 검찰 중간조사 발표 내용이다.
KD코퍼레이션 측은 이 같은 보도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반박 근거 등은 밝히지 않았다. 향후 대표 차원의 언론 인터뷰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의혹 보도 이후에도 현대차에 계속 납품하고 있는 지 묻자 “알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의혹보도 이후에도 대표가 매일 출근한다는 KD코퍼레이션 측 주장에 따라,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소재 KD코퍼레이션 두 번째 사무실을 방문했다. 하지만 정상 출근하고 있다는 대표는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KD코퍼레이션 측 관계자는 “사건이 보도된 이전에도 일주일에 1~2번 정도만 출근했다”며 “최근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