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등록 후 방어벽 없어 분실 시 위험
‘딸 300만원’ 문자 하나면 송금 끝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21일 문자메시지 하나로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텍스트뱅킹’ 서비스를 선보였다. 텍스트뱅킹은 로그인과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고 앱이나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 이용료도 들지 않는다. KEB하나은행의 대표번호로 문자만 전송하면 된다.
새 방식을 두고 고객들 반응은 갈렸다. 편리함을 반기는 쪽과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쪽으로 나뉘었다. 20대 직장인 배 모씨는 “계좌도 지정할 수 있으니 편리하고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30대 직장인 권 모 씨는 “기존의 방법들도 충분히 편리하다”며 “별로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20대 직장인 신 모 씨는 “아무리 좋은 기능이 많이 나와도 새로운 시도는 잘 안하게 된다”며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서 보안과 오류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편의성을 극대화한 혁신적인 시스템이고 보안에 대한 검증을 마친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휴대전화 분실시 우려에 대해서는 “휴대전화를 분실하면 각종 개인정보나 사생활 등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문제”라며 “자동차 사고가 두려워서 신차 출시를 안 하진 않는다”고 비유했다.
하지만 편리해진 만큼 휴대전화 분실 시 위험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동안 송금했던 내역들이 문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면 내 휴대전화를 주운 누군가도 내가 이체했던 사람에게 똑같이 송금할 수 있다. 따로 본인 확인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새로운 계좌에 돈을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장난을 칠 수는 있는 것이다. KEB하나은행 측도 텍스트뱅킹 가입페이지 하단에 ‘휴대전화를 분실하신 경우 콜센터를 통해 즉시 서비스를 이용정지 또는 해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명시했다.
KEB하나은행을 찾아 텍스트뱅킹에 관해 물었다. 상세히 상품 설명을 하던 은행원에게 “휴대전화를 자주 잃어버린다”고 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휴대전화 분실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는 않은 거래방식이라고 했다.
꼭 분실이 아니더라도 한 번 계좌 등록만 하면 송금 방어벽이 완전하게 허물어지기 때문에 가족 간, 친구 간 악용의 소지도 있다. 20대 직장인 정 모 씨는 “자녀들이 부모 돈을 탐하기에 좋은 구조”라며 “엄마, 아빠 몰래 본인 계좌에 송금하고 문자를 지워버리면 완전 범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텍스트뱅킹은 국내에선 처음 나온 간편 송금 서비스다. 공인인증서와 로그인 등 각종 인증에서 해방되면서 혁신적으로 간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정 씨는 “텍스트뱅킹을 이용하려면 휴대전화 잠금 설정부터 해야 할 것 같다”며 “귀찮아서 폰을 안 잠궜는데 어떤 게 편한 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