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수요 늘지만 승무원 채용규모 제자리

2013년 국내 국적항공사에 입사한 승무원 이아영(27·가명)씨. 입사 후 세계 여러 관광지를 다녔다. 일 하며 여행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지금은 집에서 쉬는 게 꿈이다. 입사 후 4년 동안 단 한 번도 장기휴가를 쓰지 못한 탓이다. 이씨는 “연차규정이 있지만 빼곡한 비행 계획 탓에 맘편히 휴가가지 못한다. 그렇게 쌓인 연차만 50일”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이 잦은 비행 계획 변경과 격무 탓에 연차 규정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여행객이 크게 늘며 승무원 수요도 늘어났지만, 정작 항공사들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채용규모를 늘리지 않아 승무원들의 ‘연차 병목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3년 간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으로 일했던 박시영씨(가명)는 최근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몸에 이상 증세가 왔다. 병가를 쓸까 고민했지만 그는 퇴사를 선택했다. 병가를 쓰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선배들 조언에 그는 사표를 던졌다.

박씨는 “입사 후 1년 동안 휴가를 거의 쓰지 못한다. 힘들게 들어온 직장인만큼 최대한 참고 견뎠는데, 심신이 지치다보니 신장과 간이 안 좋아졌다”며 “선배들에게 토로했지만 체력도 능력이라더라. 조언이었지만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가 돼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인사제도에 따르면 입사 후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정규직 신입사원이 1개월 개근 시 유급휴가 1일을 받게 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최초 1년간 근로에 대한 유급휴가 부여는 이미 사용한 휴가일수를 15일에서 차감해야 하나 대한항공은 최대 5일만을 공제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측은 오히려 휴가사용을 장려하고 있다고 했다. 연차 휴가를 전일 사용이 아닌 반일(오전 또는 오후)만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지난해 5월 1일 부터 시행, 휴가 사용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연차휴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하도록 각 팀·그룹 보직자에 대한 인사 평가에 소속직원 휴가 사용 현황을 반영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여전히 연차를 제한하는 문화가 사내에 팽배해 있다고 토로한다. 또 조종사의 경우 비행계획이 한달 단위로 미리 통보돼, 자유롭게 연차 사용일을 정할 수 있지만 승무원의 경우, 비행 스케줄이 유동적으로 바뀌는 탓에 미리 휴가계획을 세우기 버겁다.

이 같은 문제는 대한항공에 국한되지 않는다. 입사 4년차 아시아나 승무원 차미영(가명)씨는 “연차를 사용해도 반려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차를 썼는데 그 전날 비행을 강요해 경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연차 15일 중 8일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12월에는 비행 성수기인지라 더 이상 연차 사용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지난 7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전문대학 엑스포에서 스튜어디스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업계에서는 승무원들이 연차를 쓰지 못하는 환경의 가장 큰 요인은 승무원 수요에 비해 채용규모가 워낙 적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경영정상화라는 명목 하에 승무원 채용규모를 늘리지 않고 있다. 비행 노선과 여행객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승무원 보충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승무원이 쉴 수 있는 환경도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각 항공사에 따르면 대형 항공사는 연 2~3회, 회당 100~300명 채용하고 있다. 지난해 대형 항공사 승무원 입사 경쟁률은 평균 100대 1에 이른다. 경쟁률이 치솟는 데는 승무원 지망생은 늘었지만 채용규모가 유지된 탓이다. 반면 국내외 여행객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월 여행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3% 증가한 862만명으로 집계됐다.

조용훈 공인노무사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노무와 관련된 상담이 들어오는데, 유독 승무원들은 공식적인 불만 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직장 문화가 폐쇄적이라는 것”이라며 “회사가 연차제도를 명시화하는데 그칠 것이라 아니라, 실제적으로 연차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근무 인력을 제한해놓고 일을 늘린다면 당연히 연차를 쓸 수 있는 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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