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는 보험금 위해 충치 방치
얼마 전 충치가 생긴 최모씨는 지인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치아보험에 먼저 가입한 뒤 충치치료를 하고 보험금을 타내라는 제안이었다. 최 씨는 최근에 교정과 발치, 충치치료를 한 전력이 있었지만 이를 숨긴 뒤 치아보험에 가입했다. 지금은 면책기간 3개월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치아보험 가입자 대다수가 예방 목적보다는 현재 발생한 충치를 치료하기 위해 보험을 가입하는 데 있다. 보험사도 가입자가 질병 이력을 숨기고 무진단형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있다.
“치료 이력 없다고 하고 치과를 옮기세요.” 보험설계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보험 가입 후 기존에 다니던 치과에서 치료받으면 과거 내역이 다 나오기 때문에 보장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진단형 보험 가입 심사는 있으나마나한 거짓 심사로 버젓이 진행됐다.
치아 충치치료나 임플란트, 잇몸질환 등을 보장하는 치아보험은 크게 진단형과 무진단형으로 나뉜다. 진단형은 보험 가입 전 직접 치과 진단를 받고 기록을 제출해야 가입 가능하며 가입 절차가 까다롭지만 보장한도와 폭이 넓다.
반면 무진단형은 보장한도와 폭이 좁은 대신 치아검진 없이 전화를 통한 간편 심사로 가입이 가능하다. 1년 이내에 충치치료를 했는지, 5년 이내 발치한 적이 있는지 등만 답하면 된다.
종합보험센터 설계사 홍 모 씨는 “어차피 치아보험 보상금액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보험사에서도 조사 없이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보험사기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자 종합보험센터 설계사 박모씨는 “사실대로 고지해야 하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보험 유지와 보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불법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얼핏 보면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속아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보험사들은 일단 손님을 모으고 보자는 전략”이라며 “가입자를 끌어들인 뒤 상품을 정교화 시켜 지급 예외 항목을 만들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사들은 영업을 하면서 심사를 엄격하게 할지, 완화할지 계속 수정해 나간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쉽게 가입이 되니까 이득인 것처럼 보여도 막상 보험금 지급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치아보험 관련 소비자피해 상담은 2012년 404건에서 2013년 587건, 2014년 791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그러나 피해 구제건수는 2012년 12건, 2013년 22건, 2014년 37건으로, 3년 평균 피해 구제율이 3.79%에 불과했다.
피해 내용 중에는 ‘보험금 미지급 및 과소지급’ 피해가 가장 많았다. 치과치료를 받은 내용에 대해 보장해 준다고 했으나 약관 규정을 이유로 보장하지 않거나 보장금액을 적게 지급하는 피해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치아보험의 면책기간은 90~180일이다. 충전치료나 보철치료 등 보존치료의 경우 보험 가입 3개월 후에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고, 임플란트나 틀니 같은 보철치료는 대개 6개월이 지나야 보장이 가능하다. 보험 가입기간에 따라 보존치료는 1년, 보철지료는 2년 이내에는 보장액의 50%만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앓는 이를 방치하는 가입자들이 많았다. 꼬박꼬박 납부한 보험료를 타 먹기 위해서는 면책기간이 지나야하기 때문이다.
치아를 위한 보험인데 오히려 치아가 망가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합보험센터 설계사 박 씨는 “대개 증상이 생긴 후에 보험에 가입한다”며 “보장받기 위해 다들 참고, 너무 아프면 진통제를 처방받아서 먹기도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