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 적용 결정적 증거 될 수도…CJ "독대시 그런 논의 없었고 검찰에서 그 같은 진술 안 해"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이재현 회장의 특별사면을 기대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가성을 사실상 인정하는 진술로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에 대한 뇌물죄 적용에 결정적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지난 13일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손 회장으로부터 "박 대통령과 지난해 7월 독대 자리에서 특별사면 관련 대화를 나눈 후 재단에 돈을 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회장은 이 회장 모친인 손복남 CJ제일제당 고문의 동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있었던 재벌 총수 9인과의 독대에서 재단 기금 출연 등을 요청하고 총수들로부터 각 기업들의 '민원'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 간의 독대 내용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검찰 조사에서 기금 모금이 박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한 상황에서 손 회장의 이번 진술은 대가성 입증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대기업 총수로서는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재계와 법조계에선 제기된다. 대가를 바라고 돈을 건넸다는 취지로 진술한 만큼 스스로 뇌물 공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보통 뇌물 사건에서 뇌물 공여자의 진술은 결정적 증거로 작용한다. 현재 검찰이 박 대통령을 향해 압박 강도를 높여가는 배경에도 이 같은 증거 확보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재벌 총수라면 검찰에서든 법정에서든 '몰랐다'고 진술하는 게 보통"이라며 "손 회장 진술은 사실상 죄를 자백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검찰에 불려나온 총수 대부분은 재단 출연 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CJ는 공식입장을 통해 "손 회장은 검찰에서 그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손 회장은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사면 관련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따라서 사면 논의 후 출연금을 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CJ그룹은 박근혜정부에서 거듭된 고초를 겪어왔다. 검찰의 박근혜정부 첫 사정 대상 대기업도 CJ였다. 이재현 회장은 박근혜정부 출범 4개월 후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네 번의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는 지난해 광복절에 재벌 총수로는 유일하게 특별사면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 회장의 구속 직후에도 총수일가에 대한 정권 차원의 압박은 계속됐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이 회장이 구속되고 같은 달 손경식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VIP(대통령) 뜻'이라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총수가 구속된 그룹에서 경제단체장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손 회장은 7년간 맡고 있던 상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조 수석은 같은 해 10월경 손 회장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번에도 "VIP 말씀"이라며 "너무 늦으면 진짜 난리가 난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연말을 사퇴시한으로 못 박으며 사퇴를 거부할 경우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가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실제 국세청은 CJ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고,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편 손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퇴진 압력을 가한 조 전 수석은 17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참담하다"며 "나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경제수석을 지냈다는 사람이 이런 자리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부끄럽고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