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티드 카는 중·미 기업과 합종연횡 진두지휘…'집토끼' 수소차는 소극적 행보로 경쟁서 밀려

 

차세대 먹거리를 둔 현대자동차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양산차 개발에 성공했던 수소차는 도요타에 주도권을 내줬고 판매는 게걸음 하고 있다. 미국 및 중국 정보통신(IT) 기업들과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3384억원)에 인수하면서 경쟁이 과열됐다.

업계는 정의선 부회장 행보에 주목한다. 커넥티드 카 부문에서는 중국과 미국 유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연이어 만나는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수소차 부문에는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미래차전략의 활로 시계(視界)가 불투명해지며, 그룹 차기 수장인 정의선 부회장도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 ‘산토끼’ 커넥티드 카 잡기 위해 혈안

커넥티드 카는 자동차산업 화두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폴더형 휴대폰이라면 커넥티드 카는 스마트폰이다. 사물 인터넷(IoT)을 통해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시설물 등을 연결한다. 양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이 분야를 선도할 경우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완성차사와 IT기업 모두 차세대 먹거리로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현대차 역시 커넥티드 카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를 통해 자동차 근골인 파워트레인과 모듈 기술을 확보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이 취약하다. 커넥티드 카 핵심기술인 IoT 및 OS(운영체제) 등이 IT 전문 기업에 밀린다. 

 

4월 19일 현대자동차그룹 양재사옥 회의실에서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사진 오른쪽)과 시스코 척 로빈스 CEO(사진 왼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진=현대차그룹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 행보는 현대차에게 고민거리다. 삼성전자는 14일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3384억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하만은 전장사업 소프트웨어 분야 세계 1위 업체다. 커넥티드 카 핵심기술인 텔레매틱스, OTA(무선통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솔루션 기술 등을 갖췄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커넥티드 카를 차세대 그룹 핵심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추가적인 자동차 관련 기업을 사들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금력은 충분하다. 지난 3분기 갤럭시노트7 폭발 악재가 겹쳤지만 벌어들인 영업이익만 5조2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현대차 영업이익(1조681억원)의 약 5배다. 결국 삼성전자가 한정된 커넥티드 카 산업 파이(pie)를 두고 현대차와 다툴 경우, 현대차가 수세에 몰릴 수 있다.

현대차는 합종연횡을 해결책으로 들고 나왔다. 그 동안 자사 연구진을 통한 ‘순혈주의 개발’을 고집하던 모습을 버렸다. 정의선 부회장 행보가 눈에 띈다. 정 부회장은 지난 7~10일 중국 출장에서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과 척 로빈스 시스코 CEO(최고경영자)를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폭스콘은 애플 아이폰 조립업체, 시스코는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 업체다.

◇ ‘집토끼’ 수소차, 일본 공세에 ‘집 나간 꼴’

현대차가 커넥티드 카에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수소차 부문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수소차는 전기차를 뛰어넘는 궁극의 친환경차로 각광받고 있다. 현대차는 지방자치 단체 및 외국 기업과의 수소차 공유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커넥티드 카와 같이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칼을 빼든 모습이 아니다.

올해 현대차가 진행한 수소차 관련 주요사업은 4가지다. 지난 1월 18일 광주광역시 진곡산업단지 내 수소차와 전기차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의 복합에너지충전소를 완공했다. 6월 4일에는 산업용 가스회사인 프랑스 에어리퀴드사와 수소·전기차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6월 9일에는 독일 가스 기업 린데에 ix35 FCEV(국내명 투싼 ix) 50대를 전달했다. 린데는 이 차량을 계열사 ‘비제로(BeeZero)’의 무공해 카셰어링 서비스에 활용할 예정이다. 지난 9월 12일에는 올해 말부터 울산 지역 수소전기차 택시 시범사업, 광주 지역 수소전기차 카셰어링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대차 행보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수소차 관련 사업이나 제휴현장에는 주로 정진행 현대차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 부회장이 광폭행보를 보인 커넥티드 카 부문보다 무게감이 떨어진다. 제휴 역시 공유서비스에 치중돼 있고 규모도 작다. 실적과 직결되는 일반 판매망 강화나 신차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도요타 수소차 미라이가 미국시장에서 투싼ix보다 10배 가까운 판매량을 보이고 있고, 독일 다임러그룹은 수소차를 내년에 첫 양산형 모델로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앞서 2013년 수소차 양산을 세계 최초 성공했다. 현대차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관련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먼저 확보했음에도 보수적 투자로 경쟁사들에게 쉽게 추월을 허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현대차 전(前) 임원은 “현대차는 과거 독일차와 일본차를 카피(베끼기)하며 성장했다. 그렇다보니 산업을 선도하는 것보다 추격에 능숙하다”며 “커넥티드 카가 현대차가 쫓아야할 ‘산토끼’라면 수소차는 현대차가 최초 양산에 성공한 ‘집토끼’다. 최근 현대차 행보를 보면 산토끼 잡으러 뛰어가다 애써 잡아놓은 집토끼 풀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몽구 회장이 간부 전략회의 때마다 수소차 시장 선점을 강조한다고 하는데, 이미 선점에는 실패했다. 일본차가 선도하고 독일차가 추격하는데, 현대차는 2018년에야 수소 신차를 내놓는다고 한다정의선 부회장이 커넥티드 카 강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듯, 수소차 부문에서도 보다 공격적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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