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호무역 강화 시 현대·기아차 타격 불가피…주력 차종 수입 한국GM은 기대감 상승
“한국과의 무역협정은 한마디로 미국 일자리 킬러다.”
한국 자동차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보호무역을 외쳐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탓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줄곧 비판하며 재협상을 강하게 시사해왔다. FTA를 통해 무너뜨렸던 관세장벽을 다시금 높게 세우겠다는 것이다.
가장 불안해하는 업체는 현대·기아자동차다. 현대·기아차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에 내다파는 자동차만 연간 60만대다. 자동차관세가 높아진다면 가격경쟁력 추락이 불가피하다. 현대·기아차가 트럼프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반면 주력차종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한국GM은 트럼프 시대를 기회로 삼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 현대·기아차, 관세 높아질까 ‘전전긍긍’
현대·기아차에겐 악몽 같은 9일이었다.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중서부의 제조업 지대) 부활을 외쳐온 트럼프가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자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수입 관세장벽을 높이고 기존 FTA 협상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혀왔다.
한국이 미국에 수출할 때 붙는 승용차 관세(2.5%)는 올해부터 철폐됐다. 트럼프가 한·미FTA를 수정한다면, 한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가 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다면 관세 인하 효과를 현지판매 가격 할인으로 반영하는 현대·기아차 전략이 무의미해진다.
현대·기아차 미국 현지생산 비중도 문제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주요 업체들의 현지생산 비중은 지난해 기준 67.5% 수준이다. 포드, 혼다, FCA 는 각각 93.4%, 80.0%, 78.1%로 높은 미국생산 비중을 보이고 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54.5%로 경쟁사 대비 현지생산 비중이 현저히 낮다.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한다면 현대·기아차가 경쟁사보다 타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보단 기아차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5월부터 가동 중인 멕시코 공장에 대한 우려다. 기아차는 연산 40만대 규모인 멕시코 공장을 대미 수출 요충지도 삼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멕시코산 생산품에 대해 35% 과세를 주장하고 있다.
권순우 SK증권 연구원은 “트럼프가 멕시코 관세 35%를 제창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보다는 멕시코 공장으로 인한 기아차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트럼프가 부품에 대한 제재까지 가한다면 멕시코에 진출한 기아차 동반진출업체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한국GM, 트럼프 당선 기회 될까
한국GM은 이례적으로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트럼프 당선에 공식적인 반응을 내놨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AMCHAM, 한국GM 사장) 회장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28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 참석해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김 사장 발언을 두고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양국의 관계를 고려한 형식적인 답변이라는 의견과, 한국GM 수장으로서 미국 대선 결과를 실적 상승 지렛대로 삼겠다는 희망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GM은 GM의 수출기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국GM은 올해 국산차 수출 1위 차종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랙스와 경차 스파크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관세를 부활시킨다면 GM은 수출기지로서 매력이 떨어진 한국 외에 타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반면 한국GM이 미국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대형세단 임팔라와 스포츠카 카마로SS는 트럼프발(發) 수혜를 입을 수 있다. 한국GM은 특히 주력 차종인 임팔라의 공급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GM은 GM 미국 디트로이트 햄트리 공장에서 임팔라를 수입하고 있다. 국내로 들여올 수 있는 월 평균 최대 임팔라 공급량은 1000~1500대 수준이다. 임팔라는 출시 초반 월 평균 1500대를 상회하는 판매량을 보이며, 초도 물량 공급에 애를 먹었다. 트럼프가 대한(對韓) 수출량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다면, 임팔라 등 수입차종 공급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미국 대선은 정치적인 이슈다. 한국GM은 GM과는 별도의 회사기에 미국 현지 이슈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FTA 재협상 등) 큰 변화를 쉽게 예상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한국GM이 미국에 차량 수입과 수출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영향은 신중히 평가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