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막대한 피해 불구 근본 대책 못 내놔…대처 요령 안내에만 급급
금융감독원이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는데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평소 대출받기 어려워했던 서민을 노리고 이뤄지는 범죄인 탓에 단속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방지 안내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10일 금감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자신을 금융회사 직원으로 속여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대출해 줄 것처럼 속인 뒤 돈을 챙기는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 피해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대출빙자형 피해금은 매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월 83억원이던 피해금은 지난달에는 137억원(잠정집계)으로 65% 늘었다. 누적 피해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주로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체감하는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이 미등록 대부업체 대신 1금융권 은행을 이용하려면 대출에 따르는 요건이 낮아져야 하는 데 지금 이 부분이 은행 자율에 맡겨져 있어 서민이 대출받기는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출을 주겠다며 금융회사를 사칭한 범죄 전화를 받으면 서민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범죄 앞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보통 '우리금융인데요. 서류 없이 대출 가능하신데 필요하신 자금 있으세요?', '신한금융입니다. 연체만 없으시면 당일대출 가능하신데, 필요하신 자금 있으세요?' 등 대출영업을 하지 않음에도 서민에게 익숙한 대형 금융사를 사칭하며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기범들은 은행 대출이 어려운 서민이 많이 이용하는 할부금융회사,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회사를 주로 사칭해 범죄를 저질렀다.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범죄 중 할부금융사 사칭 비율은 32%, 상호저축은행 사칭은 31%를 차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피해자들은 사기범을 금융회사 직원으로 오인해 경계심을 늦추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두고 금감원 대응책에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담겨있지 않고 내놓은 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범죄를 방지할 방법보다, 이런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고객 안내 정도로만 그치고 있어 앞으로도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범죄가 줄어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내놓은 대책은 이런 지적대로 금융소비자 유의사항에서 머물고 있다. 금감원은 피해 사례를 보도자료로 배포한 뒤 "대출 권유 전화를 받으면 길게 통화하지 말고 금융회사 직원인지 대출 모집인인지 우선 문의해야 한다"며 "사기범이 위조한 재직 증명서를 보내주거나, 가짜 홈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 주소를 보내주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방문 상담을 요청한 경우 거절하면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등 소비자 예방 안내 강화에 힘을 쏟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피해자를 가짜 금융사 홈페이지로 안내해 개인신용정보를 입력하게 한 뒤 정보를 빼가는 수법도 나타나고 있다. 가짜 홈페이지에는 대형 금융사 로고가 있어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해서도 소비자 대처 요령 안내만 강화하는 모습이다. 유령 금융사 홈페이지가 발견되면 해당 홈페이지를 폐쇄 조치하고,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번호 이용을 중지 요청하는 등 사후 처리에만 신경 쓰고 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한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말해주는대로 유령 홈페이지에 들어가 계좌번호 등 개인신용정보를 입력하고 나와 전화를 끊고 다시 들어가 보니 이미 홈페이지는 사라진 뒤였다"며 "걸려온 전화로 다시 걸어도 없는 전화로 떴다. 금감원이 사후 폐쇄 조치 등을 말하고 있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사기범이 사용하는 금융회사 사칭 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실제 들어보면 대출광고인지 보이스피싱인지 구별하기도 어렵다"며 "고객이 범죄를 먼저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인식해야 예방이 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대처 안내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