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은행권 장악력 약해지며 낙하산 풍문 자취 감춰
최순실 국정논단 사태의 영향으로 은행권 낙하산 인사 풍문이 자취를 감췄다. 청와대가 국정 장악력을 잃으면서 은행권 인사 입김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권은 최고경영자(CEO) 교체에 내부승진과 연임 가능성이 강화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다음 달 27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기업은행은 정부 순수 지분이 51%가 넘는 국책은행이다. 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권선주 행장이 내부 승진 케이스였지만 지난 인사 때 10일 전까지만 해도 본인조차 행장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정부 입김이 강하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권 행장 임기가 다음 달에 만료되는데 최순실 사태로 최고 결정권자인 청와대가 마비된 상황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갑작스러운 경제부총리 내정으로 금융위 수장 자리마저 공석인 상태"라며 "정부 장악력이 약해진 상황이다. 은행 내부에선 이번에도 (정부 낙하산 인사보다) 내부 승진자가 나와 행원들에게 모범이 됐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박춘홍 기업은행 전무가 권선주 행장을 이을 유력한 후임자라고 꼽고 있다. 박 전무를 비롯해 이상진 여신운용그룹 부행장, 김도진 경영전략그룹 부행장도 후보로 거론된다. 현 정권이 중심을 못 잡고 있는 탓에 당분간 권 행장 임기가 연장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도 최순실 사태로 낙하산 인사가 오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오는 11일 민영화 본입찰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은행 상황을 잘 모르는 정부 인사가 오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 이광구 행장의 연임을 원하는 내부 목소리가 높다"며 "이 행장이 민영화를 위해 전력한 모습을 모두 봤다.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연임이나 내부 인사가 와야 일 처리에서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 사람이 와서 책임지고 민영화를 마무리한다고 해도 민영화를 위한 과정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려 비효율적"이라며 "내부에서는 이 행장 연임이 민영화에 좋다는 의견이 많다"고 설명했다.
금융권도 이 행장 재신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 주도권이 약해진 상황에서 우리은행 민영화가 성공할 경우 민영화에 참여한 업체들이 이광구 행장 연임을 밀어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임기 중 외환·하나은행 전산시스템 통합, 노조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눈에 띄는 실적 개선까지 이뤄 연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하나은행과 최 씨 모녀 특혜 대출 논란이 일어나면서 하나은행 내부에선 비상이 걸린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순실 악재가 겹칠 경우 함 행장 연임이 어렵게 될 가능성도 있다"며 "은행마다 최순실 게이트로 느끼는 체감이 다르다. 하나은행은 향후 행장 행보를 결정하는데 이번 사태가 고비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KB국민은행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겸직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회장·행장 분리설이 나오면서 정부 측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다. 윤종규 회장 임기는 내년 11월이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설이 최순실 사태로 사그라지면서 국민은행도 차기 인사에 낙하산 인사가 오기 힘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민은행 관자는 "최순실 사태로 아무래도 인사에 새로운 방향이 진행되는 것 같다"며 "회장·행장 분리설이나 낙하산 인사 등에 대해서 진행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KB국민은행은 최순실 씨와 일가가 국민은행을 통해 거액 대출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검찰이 시중은행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 가운데 차후 특혜나 불법 대출이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행장 연임 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31일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농협·기업은행 등 8개 은행을 압수수색 했다. 검찰은 이날 최순실 씨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차은택 씨에 대한 금융거래 내용 제출을 요구했다. 8개 은행은 지난 1일 요청받은 거래 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