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방안 모색하며 추가 폭로도 암시…회사측 “공익 아닌 사익 추구" 주장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요. 천천히. 해고로 끝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3일 수화기 건너 들려온 김광호 현대차 부장(54)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감기 몸살을 앓고 있다 했다. 통화 중간 한숨과 침묵이 번갈아 이어졌다. 불과 한 달 전까지 “현대차가 결함을 알고도 리콜하지 않았다”며 줄곧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했던 그다.
김 부장은 2일 현대차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 부장이 품질 관련 회사 기밀정보를 절취해 유출시키고 회사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게 사측 주장이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달 24일 김 부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뒤 징계수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김 부장은 1991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그 뒤 연구소와 생산부, 엔진품질관리부, 품질본부, 구매본부 등을 거쳤다.
25년간 현대차에 몸담으며 생겨난 애사심은, 김 부장이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7개월 간 현대차 품질전략팀에서 근무하며 산산조각 났다. 현대차가 30여건에 이르는 차량 품질문제를 은폐·축소하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김 부장은 당시 확보한 자료와 증언을 언론사와 자동차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렸다. 현대차 최초의 내부고발이었다. 김 부장은 일각에서 제기돼 왔던 ‘내수차별 문제’, ‘리콜대상 차량 은폐’ 등이 현대차 내부에서 조직적·관습적으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또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등에 현대차 품질문제를 공익제보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현대차가 김 부장과 대화에 나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빚어졌다.
현대차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의 상사였던 장모씨의 형사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자료 유출을 확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는 게 사측 주장이다.
장씨는 현대차 전직 임원으로, 중국 경쟁사에 자동차 기술과 관련된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현대차는 김 부장이 회사정보를 이용해 사익(私益)을 편취하려 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비밀정보 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사측은 가처분 신청 결과와 별개로 내규에 근거해 해고를 결정했다. 현대차 품질문제는 공익(公益)을 위해 공개한 것으로,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고 싶다던 김씨에겐 최악의 결과다.
김 부장은 “사측의 일방적 해고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가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공익신고자에게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신고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을 시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원상회복 등 신분보장을 받게 된다.
김 부장은 현대차가 해고 근거로 내세운 사례는 과장되거나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현대차 주장에 대한 해명은 언론이 아닌 유관기관을 통해 하겠다고 했다.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는 단체인 호루라기재단과 함께 향후 대응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은 추가적인 품질문제 고발을 예고하기도 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 부장은 “현 시점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일부 언론과 추가적으로 (품질문제 고발 등을) 진행할 계획이 있다”며 “미국 정부가 공익 제보한 내용을 조사 중에 있고 해고문제도 쉽게 풀릴 것 같진 않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장기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는 “김 부장은 공익을 목적으로 했다고 하지만 유출한 자료에는 회사 핵심 기술 등 기밀사항이 담겨있다”며 “김 부장이 이를 알고 사사로운 요구조건 등을 내걸었기 때문에 해고 한 것이다. 공익제보가 문제가 아니다. 김 부장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 15일 안에 소명하면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