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에 폭탄 돌리기"…전문가들 "조선업 2년만 버티면 회생할 수 있어"
정부가 31일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두고 정치권과 조선업계에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정부가 2020년까지 250척 이상, 11조원 규모의 발주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야당 의원들이 “버틸 심산만 가득한 텅텅 빈 요란한 수레같은 방안"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수주난이 심화된 현 상황에서 조선업을 사이에 둔 여·야의 정략다툼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조선사가 향후 1~2년간 수주절벽을 버텨낼 수 있는 방안만 찾는다면 조선산업 회생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31일 서울청사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조선·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조선밀집지역 경제활성화 방안을 확정했다.
방안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이른바 ‘조선 빅3’의 합병안은 백지화한다. 대신 조선업 수주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선박 조기 발주, 선박펀드 활용 등을 통해 2020년까지 250척 이상, 11조원 규모의 발주가 추진된다.
조선업 침체로 위기에 빠진 경남과 울산, 전남, 부산, 전북 등 5개 권역에 2020년까지 3조7000억원 규모 투·융자가 이뤄진다.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 신청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해운산업에도 6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이 실시된다.
유일호 부총리는 "정부는 근본적인 경제체질 개선 없이는 국제경쟁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인식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개혁에 매진해 왔다"며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엄정한 손실분담 원칙 아래에 기업 체질 개선을 유도해 왔는데 앞으로도 당사자 책임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 자금지원 없이 정상화한다는 것이 정부나 채권단의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조선업황이 2018년부터 조금씩 회복되겠지만 2020년에도 2011∼2015년 평균에는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공공선박 조기 발주, 선박펀드 활용 등을 통해 250척 이상, 11조원 규모의 발주를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조선 3사 도크 수를 현재 31개에서 2018년까지 24개로 23% 가량 줄이고 직영 인력 규모도 6만2000명에서 4만2000명으로 32% 감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는 친환경·스마트선박 등 건조선박의 고부가가치화, 선박수리·개조 및 플랜트 설계 등 새로운 서비스시장 개척 등 두 방향에서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대책안을 두고 조선업계와 정치권 평가는 극단을 오간다.
국민의당 채이배 등 야권 의원들은 31일 정부의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과 관련해 "단순히 설비와 인력을 줄이는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임기를 버틴 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차기 정권으로 떠넘겨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 맥킨지 보고서의 요약본에 불과하며, 지난 6월에 나온 '조선산업 구조조정 추진체계 개편 방향'에서 아주 약간 업그레이드하는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의원들은 또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기업, 노동자 각각의 역할과 협력이 매우 중요하나 지난 4개월 동안 박근혜 정부는 회사와 국회, 노동자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며 "박근혜 정부의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정책 추진은 각 부처의 정책 혼선, 구조조정 이해관계자들의 혼란과 신뢰의 위기를 줬고, 객관성을 훼손시키는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분석한 조선 산업 전망은 결론이 아니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박근혜 정부는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조선 산업의 모든 이해 관계자들과 함께 의견을 수렴하고, 구조조정의 방향과 대책을 찾아가는 지혜를 모으기 위해 '조선산업발전 국회의원 모임'이 제안하는 국회·정부·회사·노동자의 4자 협의체 구성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선산업 대책안이 다소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선박 수주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양적 구조조정과 금융지원을 병행해 실시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조선업에 ‘지원의지’를 보인 것만으로도 해외 선주들에겐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조선업을 살릴 수는 없더라도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정부가 가지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을 사양사업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조선은 죽을 수 있다”며 “조선업이 지닌 고용력과 파급력 등을 고려해 정부가 지원의지를 계속 보여야 한다. 조선사들은 향후 1~2년은 이를 악물고 버티면 반등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그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