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규모뿐 아니라 세출구조도 면밀히 검토해야"
24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부가 정책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건전성과 확장재정은 동시에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확장재정이란 적자재정을 말한다. 수입보다 지출을 늘려서 전체적으로 적자가 나더라도 돈을 풀겠다는 얘기다. 재정건전성은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는 말이다. 수입이 지출 이상인 것을 말한다. 이론적으로 두 가지 목표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하지만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2%대로 바관적인데다가 9년째 재정적자가 나고 있어서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말은 재정건전성과 확대재정의 중간지점을 찾아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도 예산의 방향성이 모호하다고 꼬집는다.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 두 개를 제시하면서 면피해선 안된다고도 지적한다. 재정건전성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리하라면서 재정의 효과를 극대화하라는 뜻이다. 적자재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면서 세출 구조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금전쟁 불붙어…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
세수 효과가 큰 3대 세목은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과세 대상이 특정된 직접세이고 부가가치세는 간접세다. 조세저항은 직접세가 간접세보다 높기 때문에 저항을 줄이면서 손쉽게 과세하는 방법은 간접세인 부가가치세 인상이다.
부가가치세 인상을 지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법인세 인상시 기업 투자여력이 축소되고 고용이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 간 끊이지 않는 법인세 공방의 핵심은 여기있다. 여당은 기업활동 위축을 우려하며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반면, 야당은 법인세 인상이 곧 기업활동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세 야당은 각각 세법개정안을 통해 법인세 정상화를 주장한다. 세수 증가분을 더민주에선 4조1000억원, 국민의 당에선 2조4600억원으로 추계했다.
세 야당이 법인세 인상이 아니라 정상화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MB정부 이래로 법인세 실효세율이 줄곧 떨어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법인세 인하에도 고용과 투자가 늘지 않았다며 법인세와 투자, 고용 간 상관관계가 애매하다고 꼬집는다.
◇적자재정 불가피…저성장 고착화돼 재정역할 확대
재정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정부 여당과 야당, 학계에서 의견이 맞는 거의 유일한 대목이다. 다만 재정을 어느 부분에 늘릴 것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사회간접자본(SOC)부문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측과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김원식 건국대학교 교수는 “소득세를 올리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태일 고려대학교 교수는 “두 개를 단순히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다만 의료부문 사회보장비가 계속 줄어왔다는 것은 주목해야 한다. 특히 건강보험기금에 국고보조분이 내년부터 줄어든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정 규모뿐만 아니라 세출구조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돈을 들인만큼 효과가 나야한다는 뜻이다. 김세은 충남대학교 교수는 “재정 규모뿐만 아니라 지출 구조도 중요하다”며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문제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세출 구조를 고민해야한다. 복지부문 세출을 줄여서는 안되는 이유”라고 답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도 내년도 예산안 심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소장은 “대선을 앞둔 선심성, 특혜성 사업과 관행적 낭비성 사업과 유사중복 사업을 철저히 검증해 세금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예산안을 심의해야 한다”면서 “일자리 창출, 경제활력 회복 등 서민 예산을 실효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