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린다던 한진해운은 청산기로…최순실 게이트까지 휘말리며 경영승계도 ‘첩첩산중’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한진해운 회생과 경영안정화를 다짐했던 조양호 회장의 신년 바램이 한진해운 법정관리와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산산조각났다. / 사진=뉴스1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신년 포부가 공염불(空念佛)이 될 위기에 처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바꾸겠다는 공언은, 조직위원장 사퇴로 지킬 수 없게 됐다. 생존을 장담했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청산 길목에 들어섰다.

좋은 업황을 발판삼아 경영 안정화를 꾀하겠다던 대한한공은 조종사 노사갈등과 잇따른 안전문사고로 빨간불이 켜졌다. 조 회장 뒤를 이을 3세 경영인들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해 내내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며 조 회장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 “살리겠다더니”…한진해운도 대한항공도

올해 1월 조양호 회장 신년사에 이목이 집중됐다. 한진해운은 적자 늪에 빠져있었고,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태 이후 대한항공 신뢰도는 바닥을 친 상황이었다. 조 회장이 이들 두 기업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에 따라, 한진그룹의 한해 경영향방이 점쳐졌다.

조 회장의 신년사는 예고대로였다. 해운은 포기할 수 없으며 항공은 위기대응능력을 키우겠다게 신년사 골자였다.

조 회장은 1월 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 "해운업은 한국의 물류산업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모든 힘을 다해 살리도록 노력하겠다"며 한진해운 청산설을 일축했다.

조 회장은 항공사업 전망에 대해서는 "항공업계도 다른 사업과 같이 불투명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우리 한진그룹은 항상 위기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며 “안전사고는 철저하게 원인 조사를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신년 포부는 물거품이 됐다.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은 채권단으로부터 된서리를 맞고 반려됐다.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최근 아시아-미주노선과 유럽법인 등 ‘알짜자산’을 매물로 내놓으며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고 있다.

대한항공은 저유가와 해외여행 수요 증가를 등에 업고 호실적을 내고 있다. 다만 조 회장이 재발을 막겠다던 안전사고는 올해도 어김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29일에는 일본 나리타공항을출발해 제주공항에 도착한 대한항공의 KE718편 항공기 앞바퀴 타이어 2개가 활주로에서 모두 터지면서 완전히 파손되기도 했다.

임금인상을 두고 사측과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말로만 안전을 외치고 있을 뿐 정비실상은 달라진 게 없다”며 “정비 관련 예산은 늘기는커녕 오히려 현장에서는 부품수급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경영진이 말로만 안전을 강조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엎친 데 덮친 격…‘최순실 사태’ 불똥까지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와의 갈등과 한진해운 법정관리 여파 등 크고 작은 구설수에 연달아 휘말리며, 조 회장은 어느 때보다 힘든 한해를 보내고 있다.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해 국회의원들로부터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 강한 질타를 받는 등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 회장은 설상가상 이른바 ‘최순실 스캔들’에도 휘말렸다. 조 회장이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을 사퇴한 이유가 K스포츠재단에 10억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대통령 비서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것이다.

조 회장은 지난 5월 3일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사퇴 배경에 대해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는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등 긴급한 그룹 내 현안을 수습하기 위해 그룹 경영에 복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2011년 7월 동계올림픽 유치를 직접 이끌어낸 조 회장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결단이었다. 조 회장은 재계의 가장 큰 행사로 꼽혔던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경제사절단에도 불참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한진해운 자율협약 때문에 너무 큰 것들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 비서실 국정감사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에게 “모 재벌 회장이 ‘내가 정부 프로젝트에 1000억원 이상, 미르재단에 10억원을 썼는데, K스포츠재단에 10억을 더 내야 하냐’고 하니까, 안 수석이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전화해 (그 회장을) 평창올림픽위원장에서 해임시켰다는 소리까지 나온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수석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측이라는 게 재계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그룹 내 현안 수습에도 애를 먹는 상황에서, 정계 논란에까지 휘말린다면 향후 경영승계 작업도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재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개인이 수습하기에는 얽힌 현안들이 너무 굵직 굵직하다. 이럴 때 3세들이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신통치 않아보인다”며 “대한항공은 실적이 좋지만 당장 한진해운 지원을 놓고 배임에 휘말릴 소지가 아직 다분하다. 당장 내년부터 조 회장 뿐 아니라 한진오너가 전체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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