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시 회사 이미지보다 거주자 정서나 문화, 생활패턴 우선 반영해야
택시기사, 래미안강남힐즈에서 탑승한 승객에게: 어디로 모실까요?
승객: 래미안강남포레요.
택시기사: 제가 잘 모르겠는데 가는 길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승객: 일단 디에이치아너힐즈 방향으로 가시다가 래미안블레스티지 나오면 직진하세요. 그럼 바로 래미안강남포레가 나와요.
택시기사: 네?;;;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약 3년 뒤에는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예시로 제시한 래미안강남힐즈, 래미안블레스티지, 래미안강남포레스트 등은 모두 차로 10분 이내에 도달가능한 지근거리에 위치하게 된다. 영어로 된 데다가 합성어라 길고 복잡한데, 이름이 모두 비슷하기까지 해 젊은사람도 헷갈리기 일쑤다. 이처럼 아파트 영어이름 짓기 열풍이 불던 초창기엔 ‘주부들이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께서 쉽게 찾아오지 못하도록 건설사에 제안한 것’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사실 이같은 이유에서는 아니고 건설사가 마케팅 차원에서 지은 경우가 많다. 아파트 브랜드를 자산으로 인식하면서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을 위한 전략으로 활용하는 차원이다. 특히 분양단지 인근의 특성을 작명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인근에 산이나 숲이 있다면 포레스트를, 강이 있다면 리버뷰를 이름에 붙이는 방식이다. 그들은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여기에 좋은 뜻의 명사를 갖다붙여 합성어로 만들면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논리를 펼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이름들과는 다르다. 아파트가 들어선 1980년대 초창기에는 작명시 건설사명에 아파트를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현대아파트, 경남아파트, 한신아파트 등으로 말이다. 이후에는 건설사가 자사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면서 브랜드 이름에 건설사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삼성래미안, 롯데캐슬처럼 말이다. 인근에 같은 아파트가 여럿 있을 때에는 삼성래미안1차, 삼성래미안2차 이렇게 숫자를 매겼다. 간단 명료해 누구나 기억하기 좋은 방식이었다.
개인 취향일테니 고급화 느낌은 차치하고 요새 이름은 너무 복잡해 눈과 잘 읽히지도, 영어가 많아 입에 발음이 달라붙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건설사는 시간이 지나면 줄임말이 생겨 해결될 문제라지만 애초에 간결한 이름을 만들면 될 일이다. 또 언어파괴 문제도 있다. 작명을 하면서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는 일이 잦아졌다. 업계는 창의적 작업인만큼 기존의 문법질서는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는 해도, 길고 긴 영어이름이 아니고도 회사나 아파트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순우리말은 충분히 많다.
이런 가운데 되려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아파트 이름이 돋보인다. 한진중공업은 ‘해모로’를 자사 아파트 브랜드로 쓰고 있다. '해'와 무리의 옛말인 '모로'의 합성로 자연과 햇살이 무리지어 있는 따뜻한 주거공간이라는 뜻으로, 자연주의 및 친환경 철학을 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어감이 좋은데 무슨 뜻이냐고 묻는 고객들이 뜻을 이해하시고는 더욱 친근하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부영은 ‘사랑으로’, 금호건설은 ‘어울림’ 등 간단명료한 순우리말로 회사의 정체성과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작명이 마케팅 차원이라면 회사의 고급화보다는 소비자 정서를 우선 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거주자 정서나 문화,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반영해야 할 것이다. 화려한 화장에 악세사리를 치장하고, 향내를 풍기는 사람은 한 순간 눈길을 끌긴 쉽지만 쉽게 질리는 법이다. 기본에 충실한 은은한 사람에겐 마치 잔향처럼 여운이 남는다. 요란한 이름이 판치는 아파트 네이밍 시장에서도 한번 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