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한파로 고통 받아도 구제 어려워…그나마 냉방용은 예산 전무
지난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전 국민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에너지빈곤층이다.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이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도 이들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그러나 에너지빈곤층을 지원하고자 정부가 내놓은 ‘에너지바우처’ 예산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난방용만 지원하고 냉방용은 지원하지 않아 앞으로 폭염이 닥치더라도 지난 여름처럼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바우처는 박근혜 정권의 공약사업으로,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에너지바우처(이용권)를 지급해 난방에너지(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연탄, LPG) 구입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원대상은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맞춤형급여의 생계·의료급여 수급자(중위소득 40%이하)로서, 노인(만 65세이상)이나 영유아(만 6세 미만) 또는 장애인 포함 가구다.
지원금액은 동절기 가구당 평균 총 10만원 내외다. 구체적으로 1인 가구 8만1000원, 2인가구 10만2000원, 3인 이상가구 11만4000원 등 가구원 수를 고려해 3단계로 차등 지급한다. 에너지바우처 대상 가구는 지급 받은 바우처를 이용해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등유·연탄·LPG를 선택·구입할 수 있다.
문제는 에너지바우처 예산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행 1년 만에 거의 반토막 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에너지바우처사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에너지바우처 시행계획에는 80만가구 대상 837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겠다고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이 사업 시행 전 예산을 187억원 삭감해 실제로는 650억원밖에 편성되지 않았다. 또 한국에너지공단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 간 수급 신청자에게 총 452억을 지급해 편성예산보다 200억을 적게 집행했다. 지급한 예산 중 실사용 금액은 403억 원(운영비 포함 417억원)으로 집계됐다.
김경수 의원은 “기재부는 지난해 에너지바우처 집행 예산을 근거로 2017년 예산을 편성했고 매년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삭감할 것으로 알려졌다”며 “기재부와 산업부가 박근혜 대통령 18대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인 에너지바우처사업 추진 의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바우처 사업은 지난해 처음 시행되는 사업인만큼 홍보부족과 맞춤형 수급신청자 발굴 등이 미흡해 당초 예상보다 신청자와 수급자가 적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해 12월 진행한 ‘에너지 빈곤층 주거환경 실태 조사’에서도 기초생활수급가구의 43%가 에너지 바우처를 모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 7월 서울을 비롯한 부산, 광주, 대전, 경기(평택, 아산), 강원, 충남, 경북, 경남 등 10개 지역의 에너지빈곤층 210가구를 현장 방문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난 동절기에 에너지바우처 제도 수혜 응답자는 2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에너지시민연대 관계자는 “응답자의 86%가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이었다”며 “응답자 대다수가 제도에 대한 정보 부족, 신청조건 및 자격이 까다롭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밝혔다.
에너지바우처 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난방만 지원될 뿐 냉방 지원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에너지시민연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냉방 방법으로 선풍기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10%는 선풍기조차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응답자의 49%가 냉방을 적절히 하지 못해 어지러움 및 두통을 경험했으며, 그 밖에도 호흡곤란(11%), 구토(5%), 실신(1%)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부는 지난 8월 하절기 에너지바우처 도입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통상·에너지소위원회에 출석한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그 방안 중 하나로 하절기 에너지바우처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 계획안은 나오지 않았다.
김경수 의원은 “에너지바우처사업은 수급자의 만족도가 높고 혹한 속에서 생존까지도 위협받는 에너지빈곤층에게는 필수적인 사업”이라며 “정부는 사업 시행 첫해 실적이 낮다고 예산을 줄일 것이 아니라 긴 호흡을 갖고 에너지바우처사업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하절기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전기요금 지원 등 수급대상과 지원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