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규제대상 자산규모 높이면서 7조원대 태광 빠져… 법 개정전 시행령 개정 서두른 탓에 규제 공백
태광그룹의 총수일가 소유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상향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으로 인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성급한 시행령 개정으로 태광 등 자산규모 5~10조원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빠진 때문이다.
지난 11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선 태광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티시스와 메르뱅이 주된 타깃이었다. 티시스는 2013년 5월 동림관광개발이 기존 티시스와 티알엠을 합병해 현재 모습을 갖췄다. 기존 동림관광개발이 하던 골프장 운영에 더해 구 티시스와 티알엠 사업이었던 IT사업과 부동산 관리사업도 현재 하고 있다.
티시스는 이 전 회장 51.02%, 이현준(이 전 회장 장남) 44.62%, 신유나(이 전 회장 부인) 2.18%, 이현나(이 전 회장 장녀) 2.18% 등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이다. 지난해 실적은 매출 2118억원, 영업이익 313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 중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623억원이었다. 매출의 77%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와인 수입업체 메르뱅은 지난해 매출 23억원 중 15억원을 내부거래로 통해 얻었다. 64.9%에 달하는 수치였다. 메르뱅은 신유나씨와 이현나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태광그룹 각 계열사들은 티시스로부터 산하 휘슬링락CC에서 만든 김치를, 메르뱅으로부턴 와인을 구입했다. 국감에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열사가 시중보다 비싸게 김치와 와인 등을 휘슬링락CC, 메르뱅으로부터 임직원 선물용으로 구입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박찬대 의원은 "시중에서 5만원 하는 김치 10㎏을 19만원에 판매했다"며 "터무니없이 높은 값에 김치를 사면 돈은 누가 버느냐"며 "와인 역시 계열사에 강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반증인으로 국감에 출석한 김기유 태광 경영기획실장은 "김치는 골프장이 쉬는 3개월 동안 일손이 비는 직원들이 김장을 담근 것"이라며 고가 논란에 대해서도 "프리미엄 김치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강매 비판에 대해서도 "홍보성으로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문제는 현재로선 태광의 이 같은 행태를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제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난달 30일 자로 시행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대기업집단 기준은 10조원으로 상향됐다. 이로 인해 자산규모가 7조원대인 태광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행령 마련 당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선 '5조원' 기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별도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야당에서는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서둘러 결과적으로 규제 공백이 생겼다고 비판했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감에서 "법을 개정한 다음에 시행령을 개정하자고 정부에 누차 얘기했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개정했다"며 "규제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정기국회 일정은 보통 국정감사, 예산심의, 법안심의 순으로 진행된다. 한 야당 정무위원 비서관은 "물리적으로 법안 심의가 11월 이후에나 가능한 것을 공정위도 알고 있었다"며 "시행령을 국무회의 통과 직후 시행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민의당은 지난 7월에도 시행령 개정 이전에 공정거래법 개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시행령 개정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당시 정부의 대기업 기준 일괄 조정에 대해 "입법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채이배 의원도 "태광과 같이 다수의 금융보험계열사를 보유한 그룹의 총수일가가 횡령·배임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경우에도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 규제의 사각지대가 형성되는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국감 당시 규제 공백 지적에 대해 "규제 공백이 사실상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태광에 대해서도 '부당지원 행위'로 규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당지원 행위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비해 입증이 더 엄격해 실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채이배 의원실 관계자는 "부당지원 행위는 일감 몰아주기 행위에 더해 그 행위가 시장 경쟁성을 떨어뜨려야 하는 추가적인 조건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태광의 경우 총수일가가 사익을 얻고 이익을 편취한 건 분명하지만 와인이나 김치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진 않는다"며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