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상근부회장 퇴임 선행해야 신뢰"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회관. 전경련은 미르·스포츠재단 의혹으로 1961년 창립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 사진=전경련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창구 역할 등 정경유착 논란 중심에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한 해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의 거센 압력 속에 전경련은 자체 개혁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자체 개혁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관측된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17일 전경련 해산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심 대표는 발의안 제출 직후 취재진과 만나 "전경련은 구시대 표상이자 유물로 전락했다"며 "기업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도 전경련 해산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경련은 이미 순수한 경제단체가 아니다"며 "기업들이 탈퇴하고 해산하고 싶어도 정권 눈치 때문에 해산할 수 없다"며 "그래서 정치권, 특히 국회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의안에는 여야 의원 75명이 서명했다. 원내 1~2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은 개별 동참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해체 결의를 당론으로 정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체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면서도 "개혁은 내부에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용태 의원이 동참했다. 심 대표는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는 상당수가 '내가 서명은 안 하지만 본회의에 상정되면 찬성투표를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신 분들이 많다"며 "여야를 초월해 기업 발전과 한국 경제 회생을 염원하는 국회의원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전경련 해체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같은 당 이혜훈 의원도 수차례 전경련 역할 회의론을 지적한 바 있다. 보수층에서도 전경련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통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경제개혁연대와 함께 전경련 해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3법(일명 전경련법)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전경련법은 비영리 법인 회계 투명성과 사업보고를 의무화하고 해당 법인이 기업으로부터 강제 모금과 같은 부적절 행위를 할 경우 주무부처가 해산을 명할 수 있게 했다. 또 재벌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공공기관이 전경련 같은 이익단체 탈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 의원은 "전경련법을 계기로 재벌과 정치권력은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향후 정경유착 고리를 끊고 어떻게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이 같은 해체 압박은 전경련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전경련은 최근 들어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재벌 이익단체로서 정부·국회를 상대로 재벌 이익을 대변해 온 행태를 넘어 여권에 동조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였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그는 전경련의 각종 정경유착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 부회장은 회장단 중 유일한 상근직으로 사실상 전경련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종합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모습. / 사진=뉴스1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 이전에도 극우단체 어버이연합에 뒷돈을 지원한 것이 올해 초 드러나며 야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어버이연합이 집회 등을 통해 주로 야권 인사들을 공격할 때마다 자금 출처가 논란이 됐기에 비난은 더욱 거셌다. 전경련은 당시에도 사회적인 진상규명 요구 목소리에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공식입장만 되풀이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0월 전경련 유관기관으로서 운영자금 대부분을 전경련이 지원하는 자유경제원은 토론회를 통해 "여의도가 난장판이 되지 않으려면 친북적·반시장적 성향을 가진 후보자들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며 이들 대부분이 새정치연합과 정의당 의원들이라고 주장해 야권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자유경제원은 아울러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국정 국사교과서 추진에도 적극적 찬성 입장을 내기도 했다. 자유경제원 소속으로 국정 교과서 선봉장 중 한명으로 활약했던 전희경 사무총장은 지난 4월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전경련도 지난 1월 46기 사법연수생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에서 한국 근·현대사 강사로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초빙해 논란이 됐다. 이 교수는 친일·독재 미화 논란으로 거센 비난을 받아온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였다. 그는 2013년 새누리당 초청 강연에서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에 70% 예술계에 80% 출판계에 90% 학계에 60%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경련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17일 경제개혁연구소 여론조사에서 '전경련이 목적에 맞게 활동하고 있다'는 응답은 21.4%에 그쳤다. 부정적 의견은 64.7%였다. 같은 조사에서 전경련 해체 찬반 입장은 각각 37.8%, 37.4%로 엇비슷한 수치였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전경련 해체라는 최후 수단에 찬성하지 않는 구민도 전경련 환골탈태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경련도 각계각층의 비판 목소리에 자체 개혁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개혁안이 사무국 주도로 마련된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회의적인 반응이 제기된다. 한 재계 인사는 "사무국 수장은 이번 사태 중심에 있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이라며 "그렇게 마련된 개혁안을 야당이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전경련 자체 개혁안의 첫 순번은 이 부회장의 퇴임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경련이 각종 논란 중심에 오를 때마다 무성의한 답변으로 야당 등으로부터 사실상 신뢰를 상실했다. 그는 이번 국감에서도 일반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검찰 수사 진행 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해 여야 모두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우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는 "더 이상 상근부회장 농단에 이용당하지 말고 전경련 개혁에 직접 나서 주기 바란다.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 부회장의 국감 답변 태도를 지적하며 "정권 들러리"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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