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 판매 대리점 간 책임 떠넘기기 급급

르노삼성이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 제품 불량에 따른 인수거부 요구를 판매 대리점 계약 문제로 돌리고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중형 SUV QM6. / 사진 = 르노삼성자동차

“차를 사고 나니 실체 없는 유령회사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경북 포항시에 거주하는 김모(28) 씨는 결혼을 앞두고 르노삼성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 2.0 2WD RE 시그니쳐 모델을 구매했다. “QM6는 가족을 위한 자동차라는 생각에 큰맘 먹고 최고급 트림을 선택했다”는 그는 차량을 받고 6일 만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3000만원이 넘는 자동차를 팔고도 제품 완성도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서는 책임 전가에만 급급했다는 게 김 씨 설명이다. 그는 “전화하는 곳마다 다른 곳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면서 “르노삼성이 마치 유령회사 같았다”고 토로했다.

르노삼성이 외장 부품 균형이 맞지 않는 단차현상, 오일 누유, 도장 훼손 등 제품 불량에 따른 QM6 인수거부 요구를 판매 대리점 계약 문제로 돌리고 소비자 불만 사항 개선에는 나서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르노삼성이 사전계약 기간 중 특별혜택 제공 등 판매량 확대를 위해서만 노력할 뿐 서비스 품질 개선은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르노삼성은 사전 예약 후 올해 10월 이전 출고 차량에 대해 보증연장 프로그램(30만~50만원 상당)을 제공하는 등 출시 초판 판매량 확보에 주력했다.

문제는 지난 9월 28일 김 씨가 서울시 강동구의 한 르노삼성 판매 대리점에서 사전 계약한 QM6 차량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탁송 기사가 부산시 북구에 있는 르노삼성 자동차물류센터에서 차량을 가져오는 순간 조수석 전면에 걸쳐 부품 균형이 어긋난 단차가 김 씨의 눈에 띄었다. 김 씨는 인수증에 서명하는 대신 해당 차량을 판매한 영업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담당 영업직원은 “단차는 단순 조정으로 가능하다”며 “서울에서 확인 후 인수거부를 결정해도 되니 시간이 날 때 언제든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수증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 거부하는데 문제없다”며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단언했다.

 

차량 인수거부가 가능하다고 밝힌 판매 영업사원과 김모(28) 씨의 대화 내용. / 사진 = 시사저널e

 

이후 김 씨는 “나사를 풀어 단차 불량을 개선해야 하면 따질 것 없이 인수거부 하겠다”고 밝힌 뒤 신차검수를 받았다. 그즈음 탁송 기사로부터 차량을 받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결함들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신차검수 결과는 참담했다. 운전석 휀다 단차 불량, 차량 전면 유리와 프레임 간 단차 불량, 운전석 내부 마감 불량, 후미등 도장 훼손, 조수석 누유 흔적, 차체 지붕 위 루프랙 조립 불량 등 외장에서만 총 6개의 결함이 발견됐다.

김씨는 10월 1일 해당 판매 대리점에 도착과 동시에 인수거부 의사를 밝혔다. 담당 영업직원은 “전시용 차로 활용하다 할인판매하겠다”며 “개천절 연휴가 지나고 4일 지점장이 출근하면 진행 상황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0월 4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해당 판매 대리점 지점장은 “본사에서 정한 인수거부 허용 방침에 단차 불량으로 인한 인수거부는 나와 있지도 않다”며 “본사 서비스센터에 직접 문의하라”고 말했다. 책임지겠다던 영업직원은 “권한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르노삼성 서비스센터는 “지점장과 상의하라”며 책임을 돌렸다. 차량 계약과 관련한 부분은 지점에서 해결할 사항이라는 게 르노삼성 사측 설명의 전부였다. 이후 김 씨가 서비스센터에 지속해 결함 내용을 알리고 인수거부 의사를 밝히자 담당자에게 전달하겠으니 연락을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김 씨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수차례 르노삼성 사측과 판매 대리점 간 책임 전가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차량 판매 당시에는 할인 등 온갖 혜택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이 돌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1일 차량을 대리점에 맡긴 이후 차량 운행은 일절 하지 못한 채 6일을 기해 임시번호판 기간이 만료됐다”면서 “처음엔 차량을 교환하려 했지만 르노삼성의 태도에 환불로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했다.


문제 차량에서 발견된 외관 단차 불량, 누유 흔적 등 조립 불량 사진. / 사진 = 시사저널e

 

해당 대리점 지점장은 “단차 불량은 인수거부 사유가 될 수 없으니 얼른 차를 가져가는 게 좋을 것”이라며 “임시번호판 기간 만료에 따른 벌금 부과 및 차량 손상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고객 책임”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단차가 없는 차는 없다”며 “세금계산서가 김 씨의 이름으로 되어있고, 임시번호판도 김 씨 동의로 발급됐으므로 자동차에 관한 문제나 벌금은 전적으로 김 씨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르노삼성이 인수거부 불가능이라 잡아떼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행위다”고 지적했다. 차량 인수증에 서명하고 수령증을 받는 순간 차량과 관련한 모든 책임은 고객이 져야 하지만 인수증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차량 소유권을 소비자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계약을 해제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하자담보책임 역시 마찬가지”라며 “제조사는 잘못된 물건을 팔면 구매자에게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종선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제조물 책임법 제3조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재산 손해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제품 하자로 인한 고객 불만이 인 현 상황에서는 민사로 사안을 넘겨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차량 조립 불량에 해당하면 소비자가 차량 인수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고객변심으로 인한 인수거부도 가능한 상황에서 이 같은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고객변심으로 인한 인수거부 차량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르노삼성 판매 대리점도 마찬가지였다. 단차현상을 이야기하지 않고 단순히 차량을 인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땐 단순 변심으로 규정 인수거부가 가능하지만, 제작 결함이 발견돼 차량 인수를 원하지 않을 땐 인수거부가 불가능한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르노삼성 관계자는 “부품 균형이 맞지 않는 단차현상이 일상적인 차량 운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경우는 인수거부가 되지 않는다”면서 “부품 간 이격이 상당히 벌어진 탓에 단차현상이 눈에 띄게 심할 때는 출고 자체가 되지 않아 소비자가 인수를 거부할 정도의 차량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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