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통’ 곽진 부사장 내수부진에 퇴임…“현대차 위기 인사만으로 타결될 지 물음표”
현대자동차가 지난 14일 곽진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을 퇴임시켰다. 신차 판매 부진과 최근 발생한 품질논란 책임을 물은 것으로 해석된다. 후임으로는 ‘전략통’으로 꼽히는 이광국 워싱턴 사무소장(전무)을 임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로 현대차가 내수시장 선점을 위해 소위 물건 잘 파는 인물을 경영전면에 배치했던 ‘영업맨 완장 시대’ 종식을 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승진 0순위로 꼽히던 영업·판매 출신 간부들이 줄줄이 퇴임함에 따라, 현대차 인사전략이 전면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곽진 부사장, 현대차 영업강화의 수혜자
17일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번 인사발령을 통해 곽진 국내영업본부장 부사장을 퇴임시키고 자문으로 위촉했다. 이광국 후임 본부장은 이날 발령과 함께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곽진 전 부사장은 자동차 영업·판매계에선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곽 부사장은 1980년대 초부터 현대차에서 국내영업을 담당해온 판매 베테랑이다.
현대차는 2011년부터 세계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내수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영업력 강화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영업 분야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던 ‘곽진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현대차그룹은 2011년 12월 임원이사를 통해 현대차와 기아차 국내판매사업담당 임원을 나란히 승진시켰다. 기아차 국내 판매를 총괄해온 김창식 전무를 승진과 함께 기아차 국내영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현대차는 당시 곽진 국내 판매사업부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 12월, 곽씨는 수입차 공세를 막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으며 현대차 판매사업부장(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현대차그룹 전체 승진자의 26.7%(112명)가 영업·마케팅 부문 출신이었던 만큼, 현대차 내부에선 “영업을 거쳐야 간부가 될 수 있다”는 속설이 퍼져나갔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전 간부는 “2011~2013년 사이 실시된 인사를 보면 현대차가 얼마나 국내영업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당장 글로벌 경제시계가 어둡다보니 일단 내수에서 한 대라도 많이 팔아 위기를 넘기자는 게 오너가(家)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위 책상머리에 앉아 전략만 짜는 엘리트 간부들은 승진 경쟁이 치열했지만 곽진 부사장처럼 영업통에게는 호기였던 시절”이라며 “2012년 당시에는 김충호 사장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지만 보다 어리고 두뇌회전이 빨랐던 곽진 부사장이 실질적인 현대차 판매 브레인이었다”고 설명했다.
◇ 곽진 부사장 신화, 신차 부진·품질 논란에 ‘와르르’
현대차가 곽진 부사장에게 기대한 바는 명확했다. 수입차와 마이너 3사 공세 속에서 현대차 독주 체제를 사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현대차 내수판매량이 추락하며, 승진가도를 달리던 곽 부사장 발목을 잡았다.
올해 현대차 국내시장 월별 판매량은 3월과 5월, 6월 각각 6만대를 넘겼지만, 7월부터 다시 4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지난달 상용차를 제외한 판매량은 기아차가 3만4906대로, 현대차(3만2164대)를 앞섰다. 지난달 현대차는 사상 최저 내수점유율인 32.3%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개별소비세 인하정책 종료 여파와 노조 파업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지만, 업계에선 현대차 신차판매 부진이 내수판매 추락을 부추겼다는 평이 나온다. 여기에 영업·마케팅 전략부재도 내수침체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현대차가 올해 야심차게 출시한 아이오닉은 9월 월간 판매량이 급감하며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오닉 9월 판매대수는 384대다. 8월(667대) 대비 42.4%(283대) 줄어든 것으로 올해 들어 가장 적다.
곽진 부사장은 지난 1월 14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아이오닉 공식 출시 행사에서 “올해 국내 판매 1만5000대, 하반기 수출시장에서 1만5000대 등 총 3만대를 팔겠다”고 공언했지만, 지난달까지 아이오닉 총 판매량은 7331대로 내수 판매목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밖에 “후륜 구동 방식에 부담을 느끼는 대형 세단 고객들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란 곽 부사장의 기대와 함께 2014년 출시됐던 고급 세단 아슬란은 지난 7월부터 월 평균 100대도 판매되지 않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폴크스바겐 사태 후 고급차 시장이 무주공산이지만 BMW와 벤츠가 나눠먹고 있다. 현대차가 아슬란만으로 판매량을 늘리기엔 역부족이고 곧 출시될 그랜저만으로 2개월 사이 판매량을 회복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반기 개소세 인하정책도 종료된 상황에서 중형차 및 SUV 시장에서 국내 마이너 3사가 잘하고 있다. 현대차가 아이오닉을 내세웠지만 친환경차 수요 자체가 작다. 결국 영업 및 마케팅 강화밖에 없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볼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 영업수뇌부 교체됐지만, 업계 반응은 ‘물음표’
업계에선 지난달 현대차 내부고발로 불거진 리콜은폐 논란이 곽진 부사장 퇴임 배경이 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곽 부사장은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해 현대 수출용 차량의 차별 논란을 두고 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과 설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박 의원은 “현대차는 내수와 수출용에 차별이 없다면서 리콜에서는 차별을 두고 있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며 “북미와 국내 리콜이 차이가 나는 두 달 기간에 국민들은 흉기차를 몰고 다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곽 부사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국내와 미국 정부에 동시에 리콜 사항을 통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박 의원이 “미국에서는 엔진 10년/16만km를 보증하지만 국내에서는 5년/10만km를 보증하고 있는 점은 국내 소비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재차 지적하자 곽 부사장은 일부 수긍했다.
업계에서는 이날 국감에 반전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곽 부사장이 품질 논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내지 못했고, 결국 여론만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 어떤 간부가 국감 증인으로 참석했어도 ‘앵무새 같은’ 답변만이 나왔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품질논란이 발생하면 오너 눈치를 먼저 보는 제왕적 기업 문화가, 간부들의 위기관리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현대차 품질문제를 최초 제보한 김진수(54·가명) 현대차 부장은 “현대차의 품질과 리콜 관련된 사항 일체가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되는 구조”라며 “이 탓에 어느 유능한 간부가 오더라도 품질 논란이 일어나면 오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품질 논란을 은폐하고 축소시키는 게 하나의 관습이 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는 오너가(家) 신임을 잃은 곽진 부사장을 퇴임시키고 국내영업에 이광국 신임 부사장을 앉혔다.
‘영업맨’ 대신 ‘전략통’을 택한 현대차 인사를 두고 업계 전망이 갈린다. 이 부사장이 해외정책팀장과 브랜드전략팀장 등을 거친 만큼 지략가로서의 유능함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와, 현대차가 처한 상황이 부사장급 인사만으론 해결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동시에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전 고문은 “현대차 인사성향은 최근 몇 년 간 회장이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바뀌어왔다. 품질이나 영업, 디자인 관련 인사들의 승진 비율을 보면 오너가가 매년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 지가 훤히 보인다”고 했다.
이어 “소위 영업라인 간부인 김충호 사장이 용퇴하고 곽진 부사장까지 퇴임했다. 영업능력만으로 승진을 노릴 수 있는 경영환경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라며 “다만 현대차그룹이 최근 처한 문제들이 일선 간부들의 개인능력 탓인지는 모르겠다. 인사가 분위기전환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품질문제나 내수침체 등의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