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고 기회 낚는 '어부 철학'으로 성공…대형 IB 흐름속 은행업 진출 전략 통할 지는 미지수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 사장 시절 한국투자증권 인수·합병(M&A)을 통해 단번에 업계 선두권에 올라섰다. 그러고는 내실 다지기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써왔다. 투자자적인 색채보다 경영자적인 색채가 더 강하다. 다만 가치를 측정하는 투자 감각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 부회장은 없었을 거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근 김 부회장은 과거와 같지 않다.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 1위 증권사’를 내걸고 대우증권 인수 성공을 자신했지만 라이벌인 미래에셋에 넘겨줬다. 자존심은 현대증권 인수마저 실패하면서 무너졌다. 이제는 우리은행 지분 인수가 그의 최대 과제로 남았다. 연거푸 물고기를 놓친 김 부회장이 성장을 위해 어떤 투자 전략을 내세울 지 주목된다.
◇ 고기를 낚는 힘···“멀리 내다봐라”
‘길게 보라’는 그의 투자 전략 핵심이다.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 사장 시절 “국내 주식 투자자 시각이 너무 근시안적이란 점을 느꼈다. 연간으로 성과를 측정하다 보니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것 같다”며 그의 투자 철학을 내비쳤다. M&A를 함에 있어서도 규모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시너지가 나올 지를 고민한다.
이러한 투자 가치관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출범시킨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대표 펀드 ‘한국밸류10년펀드’는 지난 2006년 개설돼 10년 동안 누적 수익률 156.4%를 기록했다. 이 펀드를 운용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그의 저서 <이채원의 가치투자>에서 “김 부회장의 믿음과 든든한 지원으로 마음껏 가치투자를 실현할 수 있었다”며 “가치투자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인터넷 은행에 지분 투자한 것도 그의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과거와 달리 증권업계가 세계적인 저성장과 저마진 상황 탓에 수익 내기가 쉽지 않아졌다. 증권사간 경쟁은 치열해졌고 브로커리지는 축소되는 추세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김 부회장은 은행에서 해답을 찾았다. 은행의 시스템, 네트워크가 증권과 만나면 새로운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 은행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오늘보다 내일을 위한 투자라 볼 수 있다.
인재 투자에 적극적인 것도 장기적인 관점을 중요시하는 그의 철학과 맞닿는 부분이다. 특히 그는 인재를 직접 찾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부회장은 대학가 채용 설명회에 올해로 14년째 참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을 증권 사관학교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 연이은 실패··· 투자 전략 유효할까
그는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꿈꿨다. KDB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과 현대증권 인수에 열을 올렸던 것도 이와 무방치 않다. 하지만 연이어 실패를 경험했다. “대우증권은 해외 진출을 위해 꼭 필요한 매물”이라며 성공을 확신했지만 최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미래에셋증권에 내줘야 했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현대증권 인수전에서도 KB금융지주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IB의 강자라는 칭호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대안으로 삼은 은행업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되고 있다. 우리은행 지분 입찰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한화생명, 교보증권, 동양생명 등 자본력을 갖춘 보험사와 미래에셋대우, 다우키움그룹 등 증권사, 국내외 사모투자펀드(PEF) 등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헐값 매각 논란은 피하자’는 정부 생각에 매각 예정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성공해도 향후 성장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정부 주도로 대형 IB를 키우고 있는데다 핀테크, 비대면 활성화 등 금융 환경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 네트워크를 활용한 양적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증권사 인수 실패로 은행업에 대한 준비없이 전략을 급선회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부회장도 2014년 하반기 고려대 채용설명회에서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의 문화 차이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은행은 대표가 바뀌어도 영업 정책이 바뀌지 않지만 증권사는 지점장만 바뀌어도 모든 것이 바뀐다”고 말한 바 있다.
업계는 김 부회장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업을 비롯한 금융 산업 전체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 하나가 회사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된다. 반대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실행에 옮긴 결단은 회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며 “경영자의 철학과 전략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