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기 접어든 가습기 살균제 재판…검찰 vs 옥시 치열한 법리 공방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재판이 중반기로 접어들고 있다. 검찰과 가해 기업들은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중 하나인 CMIT·MIT가 일부 치약 제품에도 사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또 다른 충격을 낳고 있다. 시사저널e는 지난 6월17일 첫 공판 이후 꾸준히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공판을 취재하면서 사건의 흐름을 추적해왔다. 전 국민적 관심사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주요 쟁점과 결정적 장면, 그리고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해 보도한다. [편집자 주]​​

 

여기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봐 주십시오

 

지난 617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519. 법정이 공판 검사의 목소리로 울렸다. 이내 방청객들 눈길이 법정 한 편에 있는 대형 스크린으로 쏠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법정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검사는 구체적인 공소 사실과 혐의 입증을 다투기 전에 한 여성의 폐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제시했다. 일순간 법정은 술렁였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2001년 사망한 37세 여성의 폐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공기가 드나드는 폐 공간은 엑스레이 사진 상에는 검게 나타나야 정상이다. 그러나 공판 검사가 제시한 엑스레이 사진은 폐와 뼈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뿌옇다. 검사는 이 폐 사진으로 봤을 때 환자는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심각한 상태였고 목 부분에 이미 인공호흡기를 삽입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돌에 바람을 불어 넣는 것 같은 상태라며 피해자를 진료한 의료진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 말을 이어갔다.

 

전 국민을 분노와 공포로 몰아넣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첫 공판이 시작된 이후 16주차를 맞았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관련 기업 3곳과 옥시 전 대표이사, 연구원 등 모두 18명을 기소했다. 신현우 옥시 전 대표이사 등 5명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사기죄 등 혐의로 검찰과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공판의 최대 쟁점은 관련 기업들의 ‘고의성’ 여부다. 이 고의성을 입증해 줄 결정적 이메일 3통이 공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시됐다. / 그래픽 =시사저널이코노미

알고도 팔았다” VS “고의성 없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가습기 살균제 공판에서 부각되는 최대 쟁점은 관련 기업들의 고의성여부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이 최소한의 안전성 검사도 실시하지 않고 인체에 안전한 원료를 사용했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기소된 기업과 피고인들은 소비자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총 63억여 원(옥시 59억원·홈플러스 4억원·세퓨 81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에 따라 관련 업체 관계자들이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 흡입독성 실험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그리고 각 보고 체계에 따라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이 법정 공방의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지난 1994년 첫 제품이 나온 뒤 2011년까지 모두 20여종이 시장에 출시됐다.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유통된 지난 18년간 모두 800만 여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는 영유아와 어린이, 임산부가 대부분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영유아와 가임기 여성에게 집중된 것은 국내 최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옥시의 마케팅 전략 때문이다. 옥시 측은 아이에게도 안심이나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는 문구를 제품 전면에 노출해 광고했다.

 

이 부분은 가습기 살균제 공판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신현우 전 대표 측 변호인은 당시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며 주요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세웠다. 당시 옥시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던 한 아무개씨는 법정에 소환돼 스스로 주위에 관련 제품을 추천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사건이 공론화 된 이후에 언론을 통해 알았다이에 대해 자신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고안한 이 아무개씨는 본인도 집에서 직접 자사 제품(옥시 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바 있다.

 

그런데 공판 과정에서 고의성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이메일 한통이 제시됐다. 2005년 옥시의 연구원이 자사 마케팅에 전달한 이메일이다. 이 이메일에서 연구원은 아이에도 안심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인체 안전 역시 적정량을 사용한다면이란 문구가 광고 문구에 추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업체 관계자들이 제품의 유해성을 인지했다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증거로 제시된 연구원의 이메일을 통해서 옥시의 연구팀과 마케팅팀 관계자들이 적어도 영유아에게 사용 시 용량이나 방법 등에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연구원의 이메일을 결정적인 단서로 보고 집중 추궁하며 피고인들을 압박했다. 관련 업체가 제품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서도, 만약 안전하다는 광고 문구가 삭제되면 시장에서 버틸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해당 문구사용을 고수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이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공판을 담당하고 있는 이승언 검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연령성별을 살펴보면 5세 이하와 20~30대 여성이 전체 피해자의 95%에 이른다“‘아이에도 안심이라는 문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가습기 살균제는 겨울에만 판매하는 계절용 상품이기 때문에 당시 옥시 제품의 전체매출과 이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이메일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자료 없다

 

옥시의 고의성을 입증할만한 증거는 또 있다. 818일 공판에서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가 제조 판매되던 시기 옥시의 사내 이메일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 옥시 내부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옥시 싹싹)의 흡입독성 실험을 비롯한 인체 안전성 자료가 없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8110일 당시 옥시의 연구소 팀장이었던 최 아무개씨는 브랜드매니저 이 아무개 씨로부터 KBS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인체 안전성 검사 자료를 요구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최씨는 옥시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품 개발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또 원료물질 변경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씨는 회사 전용 이메일을 통해 방송국에서 가습기 당번의 안전성 여부와 테스트 자료, 검증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만약 없다면 방송이 불리하게 나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최씨는 아주 오래전 흡입독성 관련 외부 시험 기관에 의뢰하기는 했지만 이후 주요 성분을 바꿔 현재 인체안전성 자료는 없다. 죄송하다는 답변을 보낸 것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해당 메일은 발신인과 수신인 외에도 참조인을 포함해 모두 30여명이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99611월 옥시가 옥시 가습기 당번이라는 이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할 당시 프리벤톨R 80을 원료로 사용하다 백화 현상 등을 이유로 200010월 원료물질을 PHMG로 변경했다. PHMG2012년 국립환경과학기술원에 의해 유독물질로 지정된 물질이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때라도 해당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했다면 사망자 약 74%를 살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20051129일 옥시 가습기 당번의 브랜드 매니저인 정씨는 옥시 연구소팀과 관계자에게 옥시가습기 당번의 안전성에 대해 확인하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 정씨는 연구소팀장에게 유통업체의 문의를 전달하며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익하냐고 질문했다.

 

이에 연구원 최씨는 이 제품이 무슨 약도 아니고 인체에 유익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회신했다. 이 이메일에는 여담이지만 가습기 살균제는 살균효과를 높이자니 인체 안전성 흡입독성이 걱정되고 인체독성을 걱정하면 효과가 떨어질까 걱정되는 딜레마가 있다액체형보다는 고체형을 추천한다고 액체형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이메일 증거를 통해서 옥시 내부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한 부작용 항의와 성분 문의 등 꾸준한 문제제기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옥시의 주요 관계자들이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자료가 없음을 일부 관계자들은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결정적 장면이다. 

 

그래픽=시사저널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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